‘백조의 후예’인 알타이 쿠만딘인의 오늘

안톤 아가르코프
모든 것을 잃은 이 소수 민족에게 남은 희망은

알타이의 산 기슭에는 혹한에도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 쿠만딘 민족이 숭배하는 이 호수에서는 매년 겨울 기적이 일어난다. 짙은 안개로 덮인 호수로 수 십 마리 백조가 날아든다. 쿠만딘 민족은 자연의 혼이 백조의 모습을 하고 날아 왔다고 말한다.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백조들은 호수에서 날개를 떼고 아름다운 아가씨들로 변했다. 당시 사람들은 비밀의 호수도, 마법의 백조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수에 온 사냥꾼이 사람의 모습을 한 백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곤 첫 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다. 아름다운 백조 아가씨와 함께 있고 싶었던 사냥꾼은 그녀의 날개를 훔쳐 감춰 버렸다. 사냥꾼의 계획대로, 날개를 되찾고 백조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좌절한 백조 아가씨는 그와 함께 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백조의 후예 쿠만딘 민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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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의 인구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어떤 때는 쿠만딘인을 개별 민족으로, 또 어떤 때는 알타이 부족으로 포함시켰다. 언어학자들도 쿠만딘어를 그들만의 독립적인 언어에 따라 독립된 민족으로 구분해야 할지 이견을 보였다. 일부 학자들은 쿠만딘인들도 같은 알타이족인데, 특권을 받기 위해 독립 민족으로 분리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쿠만딘인들은 항상 자신을 개별 민족으로 생각해 왔다. 20세기 초 쿠만딘 인의 수는 6334명이었다. 그들에게는 고유의 의식, 풍습 및 전통이 있었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의식으로 손님을 맞았다. 고인을 저승으로 보낸 후 저승 문을 닫는 의미에서 마른 노간주나무 가지로 불을 피워 연기를 내고 고인이 안치된 관을 들고 집 주위를 세 번 돌며 고인과 작별을 했다. 쿠만딘인들에게는 그들만의 종교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주술사가 있었다. 구 소련 시절 20세기 중반에, 가망이 없는 환자가 된 당원들과 알타이 집단 농장 회장들을 위해 의사만 불렀던 게 아니라 주술사도 부르곤 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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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쿠만인들은 3000명이 조금 넘기 때문에 이들은 소수 민족으로 간주된다. 그들의 전통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라곤 노인들의 어렴풋한 기억, 이를테면, “우리 할머니는 이렇게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는 이렇게 했어요...”라는 것 밖에 없다. 유목, 수렵, 어로에 종사하던 쿠만딘인들은 21세기 초에 수렵을 농사로 대체했으며, 물고기도 할당량 이상은 잡을 수 없게 됐다. 쿠만딘인들의 문화를 접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에, 백조의 후예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70년 전쯤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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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족이 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했는지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어느 민족이든 자신들의 정체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종교인데, 소련의 제도와 그들의 종교는 공존하기 어려웠다. 또 소련 시절에, 이들 민족 아동들은 모국어로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촌뜨기, 러시아어도 못하네”라고 또래 아이들이 쿠만딘 어린아이들을 손가락질하며 놀렸다. 이런 식으로 민족의 뿌리가 잘려 나갔다. 또 당시 민속 연구 탐사 활동이 파괴적이었다는 점도 있다. 탐사 활동이라는 게 쿠만딘 마을에서 전통 복장, 샤머니즘 의식용 도구나 생활 용품을 빼내 오는 것이었다. 이제 쿠만딘인들은 고유의 의복을 보려면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의 진열품 보관실에나 가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런데도 허락받고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곤 민족 문화 복원에 종사하는 사람들뿐이다.

역사학자들은 쿠만딘인들이 절대로 공격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알타이 산기슭에 이민족인 러시아인들이 왔을 때 쿠만딘인들은 이들을 친구처럼 맞이했고, 타이가 지역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가르켜줬으며,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내는 방법도 일러줬다. 그런데도 대가는 침략과 학살이었다. 그렇지만 쿠만딘인은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숲 속으로 멀리 도망가 버렸다. 그 후에는 더 멀리 도망갔다.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했어요”라고 백조의 후예들은 한숨을 내쉰다.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의 끝자락에 서서 쿠만딘인들은 그들의 삶과 미래를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사실상 언어를 잃은 그들이지만 이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민족 클럽의 열성적 회원들이 오지의 노인 마을로 탐사를 가서 그들의 말과 전설을 기록한 후 주일학교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쿠만딘어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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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학생들은 수업에 만족을 느끼며, 자신이 알타이의 고대 민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 것이 지금 유행이라지 않는가. 저녁마다 작은 시골 마을의 집에서는 할머니들이 모여, 으깬 감자가 들어간 독특한 쿠만딘식 만두를 함께 빚고, 딸깐(볶은 밀을 특별한 돌에 갈아 만듦)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정감 어린 노래를 부른다. 이때는 꼭 쿠만딘어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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