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트인, 유목민과 군인에서 화가 및 조각가로 거듭나다

오세트인은 몽골 타타르의 침입 후 혹한의 산악 지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민족이다. 오늘날 그들은 창조적인 캅카스 지식인의 보루이자 고유한 종교의 보존자이다.
Northern Ossetia
러시아, 북오세티아의 주아리카우 마을에서의 아이들은 전통 춤을 추는 모슴. 출처 : 야코프 베를리네르/ 리아노보스티

블라디캅카스는 북오세티야의 수도로, ‘캅카스의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불린다. 북캅카스의 그 어느 다른 도시에도, 화가, 사진 작가, 디자이너, 배우와 같이 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다.

“정말로 예술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이런 농담을 하곤 했어요. ‘발랄라이카(러시아의 민속 현악기)를 창밖으로 던지면 아무나 받아서 연주할 거야’”라고, 오세트인이며 블라디캅카스의 승마 극단 ‘나르티’의 단장인 알리크 파가예브는 말한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이 이 민족의 유일한 특성은 아니다. 알리크 파가예브의 말에 따르면 모든 오세트인들은 군사 방면과 말을 다루는 일에 재능이 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

오세트인들은 스키타이족과 사르마트족과 같은 이란계 유목민의 후예로 2세기 역사적 문헌에는 군사력과 정치력이 막강한 종족으로 기록되어 있다. 11세기 중세에 이들이 사는 영토에는 알라니아(고대에 오세트인은 알란으로도 불렸다. 그래서 지금도 북오세티아-알라니야 공화국이라 부른다. 편집자 주)왕국이 형성되었다. 그 왕국의 국민들도 군사 기술로 유명했는데 기반은 기마 부대였다. 그럼에도 알란족들은 몽골 타타르족의 침입을 저지하지 못했으며 14세기에 사실상 거의 소멸되었다. 산악 지대에 남은 몇 백 명 알란족들은 끝까지 살아 남아 이후 러시아에 동화되었다.

알리크 파가예브. 사진제공: 아나스타시야 스테파노바알리크 파가예브. 사진제공: 아나스타시야 스테파노바

사진작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인 안나 카비소바는 “18세기에 캅카스가 러시아에 합병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는 여러 러시아 공화국들 중 하나가 되었어요. 오세트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구원으로 받아들였어요. 왜냐하면 산속에서 생존하기란 어려운 일이거든요. 지식인들은 발전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러시아로 한 발짝 다가선 것은 기회였죠.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학업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떠났어요. 그래서 이곳에 화가와 조각가들이 생겨났고, 이후 이곳 고유의 강한 예술학파와 화풍이 형성된 거에요”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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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엔 약 70만 명의 오세트인이 있으며, 그들 중 52만8500 명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은 북오세티야에 살고 있으며(45만9600명), 남오세티야에 는 4만5900명, 모스크바에 7900명, 상트페테르부르그에 3000명을 약간 웃도는 수의 오세티야인들이 살고 있다.

캅카스의 이웃 공화국들에서도 오세트인들을 볼 수 있는데, 카바르디노발카리야에 9000명 이상이, 스타브로폴 지방에 약 8000명이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카라차예보체르케스카야 공화국에도 오세트인만 사는 마을이 있으며, 인구는 3100명이다. 다른 여러 나라들에도 오세티야 디아스포라가 있다. 터키(3만7000명)와 조지아(1만4300명)에는 대규모 오세트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그녀에 따르면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 또한 이 민족의 특성이다. 그녀는 “원인은 종교에 있어요. 오세트인들은 기독교 신자들이기 때문에 이슬람계 공화국인들보다 더 쉽게 러시아인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거죠”라고 말한다.

19세기, 오세티아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 출처: 기록사진19세기, 오세티아 여성들이 일하는 모습. 출처: 기록사진

신에게 바치는 파이, 맥주와 선물

사실상 이 공화국 내의 기독교는 기존 기독교와 달리 이교적 색채가 강했다. 오세트인들에게는 수 십 여 개의 종교 축제일이 있고 이를 종교 의식으로 맞는다. 상징적인 제물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의식에 참여한 손님들을 위해 닭이나 양을 도살한다.

잘 알려진 오세티야 파이는 신성한 음식이다. 고기, 치즈, 감자로 속을 채운 얇은 원형의 파이는 오세티야인들이 가진 세계관에선 태양을 나타낸다. 축제일이 되면 각 가정은 세 개의 파이를 상에 올린다. 이와 유사한 전통 가운데 맥주도 있다.

안나 카비소바. 사진제공: 개인 기록안나 카비소바. 사진제공: 개인 기록

여러 오세티야 축제일에 여성들이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맥주를 만든다. 이곳에는 오세티야식 ‘옥토버 페스트’도 있다. 매년 10월 블라디캅카스에서 열리는 오세티야 맥주 축제이자 콘테스트이다. 러시아 전역 및 다른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오세티야인들이 이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든다. 이 음료는 외관이나 맛으로 볼 때 크바스와 많이 비슷하며, 도수는 1.5~2도이다. 맥주는 모닥불 위에 큰 솥을 걸고 그 속에서 끓인다. 주 재료는 모든 민족들에게 익숙한 호프와 맥아이며 그 밖의 재료는 양갈비와 설탕 등으로, 주조법이 수백 가지에 이른다.

오세트인은 상인이 아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장사라고 할 거에요. 오세트인들에게는 장사 수완이 없어요. 대신 재능 있는 화가, 훌륭한 운동 선수, 특히 자유형 레슬링 선수와 승마 선수들은 많이 있어요. 하지만 장사는 피하려고 하죠”라고 알리크 파가예브는 말했다.

18세기, 북오세티아의 전통옷을 입는 남성. 출처: 기록사진18세기, 북오세티아의 전통옷을 입는 남성. 출처: 기록사진

관용과 세심한 마음도 민족성으로 꼽힌다. 알리크 파가예브는 “저는 카바르디노발카리야에서 3년 동안 일했지만 아직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했어요. 카바르딘인들의 집에 손님으로 가면 그들은 자기네 말로 이야기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저를 위해 누군가가 전체적인 의미를 통역해 주곤 했어요. 오세티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을 때 한 명이라도 손님이 있다면 우리는 러시아어로 대화해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던, 제가 아는 체첸 사람이 있는데, 하루는 그 사람이 블라디캅카스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오세티야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됐대요. 우리가 항상 러시아어로만 대화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매우 놀랐죠”라고 전했다.

하지만 모국어를 모르는 젊은 오세티아인도 도시에서 볼 수 있다. 알리크 파가예브는 “슬픈 일이죠. 우리 언어는 보존되어야 해요.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오세티야어로만 말해요. 제가 러시아어를 집에서 들으면 ‘필요한 장소에서만 러시아어로 말하고, 집에서는 모국어로 이야기하라’고 하죠”라고 말했다.

북오세티아, 블라디캅카스 시. 사진제공: Lori/Legion-Media북오세티아, 블라디캅카스 시. 사진제공: Lori/Legion-Media

오세트인들의 중요한 민족적 특성으론 배우고 익히는데 나타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알라 파가예브는 “두메산골에서 학업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그나 모스크바로 오는 젊은이를 보면 사람들은 놀라곤 해요. 그런 젊은이들은 2년 동안 완전히 적응해서 완벽하게 러시아어로 말하며 훌륭한 학업 성과를 보여 주죠. 이것도 오세트인의 중요한 특성이에요. 힘든 시절 우리 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게 그 점 덕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 남부 러시아 코카서스의 산에 사는 발카르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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