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가정폭력에 경찰 소극적 대응...의회는 처벌 완화 ‘역주행’법 제정 움직임

동거남과 다투는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한 여성에게 출동한 경찰이 “무슨 일이 생기면” 시체를 확인하려 오겠다며 돌아갔다. 이 여성은 경찰이 다녀간지 40분만에 살해당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러시아에서는 가정폭력에 관한 처벌을 완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권 발전 위원회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가정폭력으로 매 40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사망하며 모든 강력범죄의 40%가 다름아닌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출처 : Alamy/Legion Media

모스크바에서 352km 떨어진 오룔 시에 사는 야나 삽추크(36세)는 전 동거남에게 발길질 등 폭행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숨을 거뒀다. 숨지기 40분 전 야나는 경찰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남성을 제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에게 자꾸 전화를 하면 출동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는 자리를 떴다.

“출동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일이라도 생겨야 출동하겠다는 말인가요?” 야나의 휴대폰에는 그녀가 출동한 여경과 나눈 대화가 녹음돼 있었다. “만약에 당신이 죽으면 당연히 경찰이 와서 시신을 확인할 거니까 걱정마세요.” 이것이 바시카토바라는 여경이 야나에게 한 말이다. 이 여경은 야나에게 무고죄로 책임을 묻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야나 삽추크. 사진제공: Vkontakte.ru야나 삽추크. 사진제공: Vkontakte.ru

이 사건을 접한 러시아 SNS와 언론에서는 경찰의 소극적 대처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당시 출동한 바시카토바라는 여경은 작년에 오룔 시 최고의 여순경으로 뽑힌 인물이었고, 야나를 살해한 전 동거남 안드레이 바치코프는 전과3범(절도, 강간, 마약소지)으로 사건 전까지 야나를 위협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SNS에는 “나도 전 남편한테 폭행을 당해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그때도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경찰은 이런 소위 ‘집안싸움’에는 개입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등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의 고백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와중에 국가두마(하원)가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법안을 심의 중이라는 사실이다.

“부부싸움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나”

현재 하원에는 항간에서 <체벌법>이라 이름 붙인 수정안이 심의에 올라 있다. 현행 관련법(<폭행 행정처벌법>)에 모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의원들의 설명이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존속 폭행에 대해서는 형사적 책임을 묻고 일반적인 폭행에 대해서는 벌금 등 행정적 책임을 묻는다. 현재 심의 중인 수정안은 두 경우 모두 동일하게 행정적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일회성 폭력이나 기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적 책임이 아니라 행정적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 Russia포커스)

옐레나 미줄리나. 사진제공: 막심 블리노프/ 리아노보스티옐레나 미줄리나. 사진제공: 막심 블리노프/ 리아노보스티

이번 수정안 입안자인 옐레나 미줄리나 상원의원은 앞서 “가정폭력(체벌)의 경우 최대 2년의 징역형과 ‘형사범’이라는 딱지가 평생 따라 붙는다. 하지만 일반적인 폭행의 경우 벌금형이 전부다. 이런 모순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줄리나 의원은 가정폭력과 일반 폭행의 처벌 수위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차별일 뿐만 아니라 관련 조항이 “국가의 가족정책 기본과제”에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가정문제에 대한 국가의 부적절한 개입을 법제화한다는 이유로 정부내에 많은 반대자를 갖고 있는 ‘청소년보호법’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미줄리나 의원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러시아정교회 가정문제 주교회의가 <체벌법>에 동조하고 있는 반면(부모의 아이 체벌을 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 정부와 대다수 상원의원, 인권활동가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반대측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처벌이 완화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산하 시민사회 및 인권 발전 위원회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가정폭력으로 매 40분마다 한 명의 여성이 사망하며 모든 강력범죄의 40%가 다름아닌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또한 남편이나 동거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의 절반 이상이 사법기관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사회 단체들의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의 3% 정도만이 법원으로 간다.

“변화하는 사회, 깊어지는 남녀 갈등”

일 년 전에 전국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모스크바에서 417km 떨어진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사는 올레크 벨로프란 남성이 자신의 아내와 여섯 아이를 토막살해한 후 자신의 어머니를 추가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사회의 엄청난 공분을 일으켰지만, 야나 삽추크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때도 사법기관의 대응이, 더 정확히 말하면 무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올레크 벨로프. 사진제공: 아나스타시야 마카르체바/ 리아노보스티올레크 벨로프. 사진제공: 아나스타시야 마카르체바/ 리아노보스티벨로프의 아내는 여섯 차례나 경찰에 남편을 신고했지만(그녀는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벨로프는 단 한 번도 입건되지 않았다. 그중 네 건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 사실을 확인했다.

러시아 경찰은 시민의 가정사에 개입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러시아의학아카데미 산하 정신건강센터의 세르게이 예니콜로포프 임상심리학과장은 Russia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 어딜가나 비슷하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다음날 마음을 바꿔 남편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폭력문제 전문가인 예니콜로포프 과장은 “흥분한 상태에서 경찰에 신고하고는 다음날 마음이 진정되면 집안의 가장인 남편이 없어지면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에 신고를 취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경찰로서는 헛걸음을 하고 고생만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경찰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의 이유를 러시아인의 머릿속에 ‘도모스트로이’(교육적인 이유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가장의 체벌을 허용하는 러시아 중세의 가부장적 생활규범집 - Russia포커스)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반대한다”며 “우리 사회는 격동기에 서 있다. 남녀평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가정폭력은 열등감에 시달리는 남자가 자신이 남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찾는 최후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은 루저다. 과거의 가부장제와는 상관이 없다. 사회가 변화하고 남녀 갈등이 깊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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