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버섯 사랑: 오성급 호텔 욕조에서 버섯을 절이는 러시아인들

Vostock-Photo
러시아인이라면 '조용한 사냥(야생 버섯을 채취하는 일을 말한다-역주)' 기질이 핏속에 흐르고 있다. 그물버섯, 노란소름그물버섯, 꾀꼬리버섯은 아이들이 보는 책뿐만 아니라 버섯 채취 시기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러시아 연방 언론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버섯 채취 시즌이 절정에 달했다. 숲에서 몇 시간 동안 버섯을 딴 세 친구와 나, 이렇게 네 명의 여성은 버섯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도시로 돌아오는 길에 오른다. 노란소름그물버섯, 포시니 버섯, 달걀버섯, 거친껄껄이그물버섯이 한 바구니이니 오늘 저녁에는 버섯 수프를 만들어 먹으면 되겠다. 우리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탄 소형 버스에 올라 탄다. 자리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다리 사이에 바구니를 끼워 세우고 서서 간다. “아, 이게 뭐예요, 그물버섯이네?” 내 옆에서 자리에 앉아있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벌써 딸 때가 됐어요?” 아주머니는 어른들이 흔히 유모차에 탄 갓난아기를 구경하듯 내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아가의 머리 대신 아주머니는 버섯의 갓을 쓰다듬는다. “실하네요! 댁에 가서 할 일이 많겠어요.”라며 소리 내어 웃던 아주머니는 자기가 내릴 정류장에서 내게 자리를 양보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버섯 바구니를 들고 숲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삶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느낄 것이다. 같은 방향이면 차를 얻어 타고 집에 올 수도 있다. 빠르면 5분 만에 집에 도착할 수도 있고, 게다가 무료로 거의 현관문 앞까지 데려다준다. 버섯 바구니를 들고 상점에 간다면 점원이 채취한 버섯을 눈여겨볼 것이다. 흰색인 그물버섯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덮어두면 된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버섯 살인과 버섯 욕조 염장 사건

작년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러시아 북쪽 아르한겔스크 주(州)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버섯을 땄다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것이다. 올 여름에는 또 다른 뉴스 때문에 한바탕 시끄러웠다. 8월에 러시아 관광객이 스위스로 여행을 갔는데 오성급 호텔에 투숙했다. 그런데 객실 욕조에서 이들이 버섯을 소금에 절인 것이다. 사연인 즉 이랬다. 50대 부부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숲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거기서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얼마나 많이 땄던지 다 먹지 못해서 저장용으로 비축하기로 한다. 그런데 어떻게 저장할 건가? 그들은 버섯을 소금에 절이기 위해 근사한 객실에 있는 욕조를 사용하기로 한다. 욕조 말고 주변에서 쉽게 사용할만한 것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러시아로 돌아온 부부는 이 호텔에 한 번 더 가기로 약속한다. 아마 버섯 채취 시즌이 다시 올 때 쯤 아닐까.

나의 버섯 공부

페기 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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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내 친구들에게 불어오는 '버섯 열풍’을 관찰하면서 외국인인 나는 학문적인 관점에서 버섯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많은 버섯의 러시아어 이름 밖에 모른다. 내 친구들은 초여름이 되면 내게 이론 학습을 시켰는데 상세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다루었다. 예컨대, 어떤 버섯이 식용인지, 어떤 걸 따면 안 되는지, 어디서 따는지, 어떻게 다듬는지를 배웠다. 이 모든 배움은 가을에 친구들이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갈 때 나도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였다.

버섯을 딸 때는 불가능이란 없다! 내 지인 하나는 운동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인데 달걀 버섯이 있을 만한 곳을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대여섯 시간을 쉬지도 않고 숲을 헤매고 다닌다.

가정에서 버섯의 역할

내 친구의 아버지는 예전에 한 공장의 대표이사로 일했던 분인데 보통은 엄하고 말수가 적은 무뚝뚝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튼실한 그물버섯 하나라도 발견하면 한마디로 사족을 못 쓴다. 버섯 얘기만 나오면 그냥 버섯(그립; гриб)이라 하지 않고 '그리복(грибок)'이나 '그리보치카(грибочка)'라며 앙증맞게 부른다. 채취한 버섯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입을 맞추고 사랑해준다. 바로 이런 이유로 '버섯 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내보다 버섯에게 다정한 말을 더 많이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러시아에 있는 것이다.

버섯 따기 시즌이 오면 러시아인 가족 사이에서는 정확한 역할 분담과 나름의 교대 작업이 이루어진다.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아침 일찍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가면, 엄마는 집에 남아서 충분히 잠을 잔다. '조용한 사냥'을 마치고 아이들과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면 모두 함께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버섯을 다듬는다. 늦은 저녁이 밤으로 넘어가는 때가 되면 엄마의 교대시간이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아니면 홀로 버섯을 삶고, 끓이고,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다. 자연이 선사한 것들을 수확할 수 있는 시기에 러시아인 가족들은 몇 주에 걸쳐 휴일을 이런 식으로 보낸다. 자연의 선물에는 버섯만 아니라, 사과도, 각종 열매도 있다.

혈관에 흐르는 ‘버섯 피’?

러시아인의 버섯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 그런 걸까, 아니면 러시아인 유전자에 버섯 사랑이 심어진 것일까? 러시아 아이들이 공부하는 철자교본에는 버섯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나온다. 독일 아이들이 광대버섯이나 그물버섯 외에 더 아는 버섯 이름이 없겠지만 러시아 아이들은 배젖버섯, 포시니 버섯, 달걀버섯 같은 단어를 들으면 이해하고 이 단어들을 활용해 글자를 익힌다. 1987년에 출판된 철자 교본에는 철자 '게(Г; 버섯에 해당하는 러시아 단어의 첫 철자-역주)'를 익히게 하려고 버섯 이름들을 모아 동시를 한 편 만들어 놓았다. 플롯은 단순하다 – 엄마가 숲에서 독버섯을 딴 아이에게 먹을 수 있는 진짜 버섯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Гриб-боровик (포시니 버섯)'. 요새 나오는 철자교본들에는 이런저런 버섯의 이름들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 버섯 수프도 등장한다.

러시아에 사는 외국인이 다른 외국인들에게 주는 작은 팁 하나. 직장 동료들, 모르는 사람들, 기차나 비행기를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 심지어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겪는다면 버섯 얘기를 시작해보라. 당신이 알아차릴 새도 없이 마법과 같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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