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노숙인, 문화관광 해설사 되다

바체슬라브 라스네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지인 넵스키 대로에 대한 관광안내를 하는 모습

바체슬라브 라스네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지인 넵스키 대로에 대한 관광안내를 하는 모습

율리야 티슬레노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아 있는 볼거리가 새로 등장했다. 도시의 중심지 넵스키 대로에서 명소들을 안내하는 연금 생활자 바체슬라브 라스네르 할아버지(65)가 주인공이다. 집은 없지만 그는 이 도시를 주제로 한 책을 엄청 읽는다. 그러다 너무 유명해져서 피곤하다고 호소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과 초가을엔 관광 안내가 끊어지지 않는다. 큰 소리로 관광객을 모으는 많은 사람 중에서 ‘아드미랄체이스카야’ 지하철역 근처에 서 있는, 깔끔하긴 하지만 옷차림이 색다른 한 노인이 눈에 띈다. 보통 관광 안내원들이 입는 노란 조끼 대신에 낡은 재킷과 통이 넓은 바지에 우스꽝스러운 덧신을 신고 있다. 등은 약간 굽었고, 흰 턱수염 아래 상의엔 바체슬라브 로마노비치 라스네르라는 이름표를 달려 있다.

관광 안내원 중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안내원

“관광 안내원이 되기 전엔 지리 교사를 했어요”며 바체슬라브 할아버지는 지난 날을 열어 보인다. 그는 관광에 필요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직접 찾는다. 바체슬라브옹은 “도서관에 <페테르부르크 연구> 편이 따로 분류되어 있거든요. 도서관 직원들이 이젠 나를 알아 보고 필요한 책을 권하기도 해요”라고 덧붙인다.

바체슬라브씨는 넵스키 대로 왼쪽 편(에르미타주를 출발하는 것을 기준)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 본부의 모퉁이에서 문화관광 해설을 시작한다. 옆으로 관광객들이 지나간다. 우산 하나를 같이 쓴 우리-여자 세명-는 그가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지인 넵스키 대로 한 가운데서 아주 오랫동안 자란 자작나무 숲 이야기,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가 임시로 머물렀던 겨울 궁전에 관한 이야기, 건물들이 단층이었던 시절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율리야 티슬레노크
율리야 티슬레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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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날씨에 바체슬라브 할아버지는 잘 익숙해 지지 않는다. 그는 6년간 말 그대로 거리에서 살았다. 집 문제는 2000년에 시작됐다. 당시 그는 공동아파트인 ‘코무날카’에서 살며 고양이와 개 20마리를 길렀다. 이 문제로 법정까지 가게 됐고 지방법원은 동물들을 보호소에 인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식처럼 정든 녀석들과 떨어질 수 없었다. 그때 한 친구가 자기 아파트에 주민등록을 하라고 권유했고 뱌체슬랍 할아버지는 거기서 2010년까지 살았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들에 속아 그 해에 결국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아스팔트에 맨 몸으로 자야했다. 그러면서 몇 몇 강아지들은 보호소로 보내야 했고 나머지들은 함께 거리에서 지냈다. 그 개들이 추운 밤이면 그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그렇게 지내던 2월의 어느 날 저녁, 자선단체 ‘노칠레시카(쉼터)’의 자원봉사자 스베틀라나 코티나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노숙인의 꿈

“나는 매일 아침 거기 있는 수영장을 다니는데 차림새가 이상한 노숙인이 있는 거예요. 어느날 그에게 커피를 대접했죠. 그때가 2월이었고 날이 몹시 추웠어요. 그 후 커피를 한 번 더 대접하려 했는데 할아버지가 이미 나와 뭔가 얘기를 할 결심을 했던 거예요”라며 스베틀라나는 당시를 회상한다. 바체슬라브 할아버지는 스베틀라나에게 “관광 안내를 해보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35년간 ‘페테르부르그를 사랑하는 사람’ 클럽의 회원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가끔 관광 안내를 하기도 했었다. 자선단체 ‘노칠레시카’는 할아버지에게 쉼터와 음식을 제공했고, 그 후 법률자문들과 함께 당국에 거주지 제공을 요청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 후 정식으로 거리의 관광 안내원이 된 바체슬라브 할아버지에게 살 곳을 제공하겠다고 하는 류드밀라 할머니가 나타났다.

현재 할아버지는 은퇴한 할머니의 방 한 칸짜리 아파트 부엌에서 살고 있다. 헤어지지 않은 몇 몇 녀석들도 함께 그 집에서 산다. 할아버지는 컴맹이라 그가 하는 문화관광 해설 활동에 관한 홍보는 자선단체 ‘노칠레시카’가 맡아서 해준다. ‘바체슬라브 라스네르와 함께 하는 산책’에 가입한 소셜네트워크 팔로워는 현재 4000명을 넘어섰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스파르타식으로 생활한다. 저녁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들고 아주 이른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관광 철이 되면 인기짱 문화관광 해설자 바체슬라브 할아버지는 하루 세 번 관광 코스를 돈다. 해설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에 한다.회당 두시간으로 가격은 1인당 500루블(8500원)이다. 할아버지는 “인기가 왜 이리 많은지..기진맥진할 지경”이라면서 “난 알랭 들롱이 아니라고 모두에게 하소연 하지요”라고 할아버지는 숨을 고른다.

커플이 하는 관광 안내

은퇴하기 전까지 성 이삭 성당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했던 할아버지의 여자 친구 류드밀라 할머니는 지금 넵스키 대로의 왼편을 따라가는 관광 노선을 준비하고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커플로’ 안내를 하기 위해서다. 동시통역을 공부하는 여대생을 찾았다고 자선단체 ‘노칠레시카’에서 알려온다. 학생은 할아버지의 해설을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통역할 준비를 갖췄다. ‘바체슬라브 라스네르와 함께 하는 산책’에 보통 두세 명이 오지만, 어떨 때는 열 명이 한꺼번에 예약하기도 한다. 그럴 때 한 현지 악기 상가가 할아버지에게 음성 증폭기를 지원한 일도 있다.

관광 안내가 다 끝났다. 할아버지는 오늘 받은 ‘소박한’ 사례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 ATM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젊은 여성들이 다음번에 친구들을 데리고 관광 해설을 들으러 와도 되냐고 묻는다. “당연히 되지요!” 약간 지친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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