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러시아 신세대는 전공을 살리지 않을까?

모스크바국립대 졸업생

모스크바국립대 졸업생

라밀 싯디코프/리아 노보스티
종종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하고 싶은 일을 깨닫는다.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가 소파를 다른 아파트로 옮기려고 했다. 친구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인부들의 행실이 어떤지, 즉 술을 마시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지를 알아보려 회사 사장에게 전화했다. 그러자 ‘무슨 말씀을. 우리 회사 인부들은 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안드레이 바실리예프가 말한다.

안드레이는 이런 말엔 ‘필요해서 가기보다 남들이 다 가니까 가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고등교육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이런 상황을 소문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모스크바 전기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입학할 때부터 엔지니어로 일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는 “학위가 필요해서 입학했다”고 말했다. 현재 가사 인력 알선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자기 삶에 매우 만족한다.

학위는 큰 의미 없어

러시아에선 이런 상황이 흔하다. “러시아에서는 고등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지, 정확히 뭘 전공하고 어떤 직업을 갖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학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는 형편이 되는대로 나중에 결정한다.” 로스티슬라프 카펠류시니코프 고등경제대학(ВШЭ) 노동연구센터 부소장은 말한다.

카펠류시니코프 부소장의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중 약 20%가 자기 전공과 관계없는 곳에서 일한다. 또 졸업자의 15~20%는 고등교육이 전혀 필요 없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말하자면 졸업자의 35~40%가 장래 직업을 얻는데 아무 쓸모도 없는 고등교육을 ‘그냥’ 받은 것이다.

카펠류시니코프 부소장은 이런 사태를 러시아의 높은 직업 이동성과 연결 짓는다. 건축 전공자가 보석 세공사로, 철학 전공자가 회계사로, 화학 전공자가 사업가로 아무렇지 않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솔함과 천직 찾기

그러나 사회학자들은 고등교육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어떤 전공을 택할지를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시콜라(대학직전까지의 교육과정) 졸업생의 약 1/3은 5월이 되도록(입학시험은 6~7월에 치러짐)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지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사회학연구소의 강사인 예카테리나 포포바가 본지에 전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졸업장을 위해’ 입학한 이들은 가능한 선택지를 고려해 직업을 찾는다. “전공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동기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별 생각 없이 뭔가를 결정하는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건축을 전공한 보석세공사 아스하트 누르마노프가 말한다.

☞가장 저항이 적은 길: 취직하기 쉬운 직업을 택하거나, 애초에 입학하기 쉽거나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학교와 전공을 택하는 것. 즉 의식적인 결정이 이뤄지지 않았거나 더 큰 것을 성취하는 데 힘을 들이지 않은 것이다.

아스하트 본인도 첼랴빈스크(모스크바 동쪽 1,498km)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설계사무소의 ‘지루한 도면들’과 씨름하는 일에 실망해 취미인 3D 모델링을 직업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현재 그는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장신구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역사적 경험

옛소련 시대에는 고등교육의 의미가 훨씬 컸다. 대학 졸업자들은 3년 동안 전공에 따라 일할 의무가 있었다. 졸업자이 파견될 장소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지만(모스크바 사람이 시베리아로 배정될 수도 있었다), 대신 배정된 사람은 해고할 수 없었다.

소련 붕괴와 함께 국가 배정 시스템도 사라졌지만, 이를 부활해야 할 필요성에 관해 대화가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세르게이 포스펠로프 러시아 연방청년청장이 “직장 배정 아이디어가 국가 장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으며 해당 시스템 도입을 정부 수준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2014년 밝힌 바 있다.

한편 로스티슬라프 카펠류시니코프 고등경제대학 노동연구센터 부소장은 직장 배정은 과도하며 졸업생들이 스스로 자기 미래를 결정하는 현재의 상황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비록 졸업생들이 전공과 관계없이 일한다 하더라도 경제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노동시장에서 고쳐야 할 점, 특이한 점이 보이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직업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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