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공동 주택을 안 떠나려 하나

아나스타시야 세묘노비치
21세기에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에는 여전히 코무날카로 부르는 공동 주택이 많이 남아 있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82,010개다. 한 아파트에 무려 10개~20개의 방이 있기도 하고, 주민들이 화장실 하나를 공동 사용하며, 샤워나 온수 사용도 항상 가능한 게 아니다. 시는 공동 주택 입주민을 독립 주택들로 이주시키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정작 많은 주민들은 그럴 용의가 없다.

☞코무날카(коммуналка)=여러 세대가 한 아파트 안에 살려 하나의 화장실, 욕실, 부엌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거 방식을 말한다. 전용면적이 작고 다른 가족의 방을 통과해야 공용 공간으로 나갈 수 있는 경우도 흔했다. 불필요한 장식은 거의 없었다. 주로 노동자촌, 공장 또는 주거지 안쪽에 지어졌다.

길고 좁은 복도,캄캄한 아파트에서 기자는 방문을 연다는 게 그만 누군가의 커다란 옷장을 열고 만다. 방이 10개인 커다란 공동 주택에서 바샤 바스카체프(27)와 알리나 벨리키나(26세)가 사는 방을 찾아야 한다. 복도 옆으론 공동 주방이 있고 몇몇 사람이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다.

공동 주택의 부엌 사진공동 주택의 부엌 사진. 출처 : 아나스타시야 세묘노비치

‘진짜 내 집’으로 이사하기 전의 중간 거점

막상 방에 들어가니 천장이 높고 조명이 환하다. 바샤와 알리나가 직접 손 본 방은 공동 주택의 다른 방들보다 훨씬 환하고 쾌적해 보인다. 온통 녹색이다. 알리나가 가꾸는 꽃과 바샤가 그린 건축 프로젝트 스케치 때문이다.

건축가 바샤는 부인 알리나와 리즈스키 대로의 오래된 건물에 있는 방 10개짜리 공동 주택의 방 한 칸에 산다. “이웃 페탸는 여기서 30년이나 살고 있는데 너무 정이 들어 편안하다고 해요. 모두가 소통하며 살기 때문이죠. 페탸가 술에 안 취해 있는 경우가 별로 없긴 하지만요”라고 바샤는 말한다.

젊은 부부에게 공동 주택은 학생 기숙사에서 개인 거주지로 옮겨 가는 중간 지점이다. 부부는 공부를 위해 카렐리아 공화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왔으며 이제는 이 도시에 계속 살 작정이다. 부부가 사는 이런 방의 가격은 일반 아파트보다 몇 배나 싸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도 시내 중심에 거처를 구할 수 있다.

공동 주택에서는 자리를 굳게 지킬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알리나는 좀 순하다. 그녀는 “우리 집엔 창고가 없어요.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입주자들이 다 차지해 버렸어요. 우리가 이 방의 주인이니까 창고도 딸리는게 맞지만 이런 일로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한다.

기자가 “공동 주택 분가 프로그램이라고 아세요? 여길 떠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자, 알리나는 “네, 들었어요. 하지만 안 믿어요. 보상금은 안 커요. 새 아파트를 변두리에서 구한다고 해도 그 돈으론 못사요. 차라리 이 방 대출금을 갚고 얼마 있다 파는 게 나아요. 새로 수리해서 깔끔한데다 부동산 가격은 항상 오르니까요. 나중에 팔면 그 돈으로 공기 좋은 교외에 집을 살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공동주택분가프로그램=시 주택 위원회가 Russia 포커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동 주택에는 259,653가구가 입주해 있다. 공동 주택 분가 프로그램은 2008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공동 주택의 일부 소유주의 경우 나머지 세입자들이 이사하지 않아도 이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시는 2016년 시 공동 주택 입주자들의 분가를 위해 31억 루블(약 556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며, 이는 4,645가구를 보상할 수 있는 액수다.

공동 주택 분가 프로그램에 따라 알리나와 바샤가 집을 구입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약 66만 루블(약 1180만 원). 그러나 새로 지은 독립 원룸 아파트의 가격은 최소 150만 루블(약 2700만 원)이다.

젊은 부부는 공동 주택에 사는 게 더 편하다고 한다. “우리는 지하철 역에서 멀고 인프라도 별로인 30층짜리 아파트에 사느니 차라리 교외로 이사할 거에요. 지금은 여기가 편해요. 직장도 가깝거든요.”

시내 중심에서의 삶

건축가 바샤의 부인 알리나. 출처 : 아나스타시야 세묘노비치방 14개 짜리 공동 주택에 사는 나스탸 소코로바(31세). 출처 : 아나스타시야 세묘노비치

큰 아파트의 주인들은 방을 세를 놔서 고정 수입을 얻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받는 일회성 보상금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또 하나의 커다란 공동 아파트가 있다.  모스크바 행 기차역 근처인 리고브스키 대로에 있는 아파트다. 이 곳은 음침한 뒷골목과 작은 술집이나 식당들이 모인 장소다. 56번지 오래된 건물의 꼭대기 층, 방 14개 짜리 공동 주택에 사는   나스탸 소코로바(31세)가 기자를 맞았다.

그녀는 방세로 월 1만5000 루블(약 27만 원)을 낸다. 크기는 약 20㎡, 창은 두 개지만 샹들리에는 없다. “온수도 안나와요. 찬물로 설거지를 해요. 주인이 보일러를 샤워실에만 놨거든요. 조명도 어두워요. 나는 화가인데 샹들리에가 없다보니 그림을 그리기엔 방이 어둑해요”라고 나스탸는 말한다. 그래도 시내 중심을 떠나고 싶지 않고, 떠나면 보상금으로 변두리에 작은 원룸 아파트를 구할 수 있어도 공동 주택에 입주했다. 그녀의 이웃들 중 많은 이들이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온 젊은 직장인들이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려고 노력한다. 다투는 일은 드물다. 공동 주택에서는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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