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할머니-감시인’의 눈으로 본 <박물관의 밤>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 할머니-감시인.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 할머니-감시인.

세르게이 퍄타코프/리아 노보스티
지난 5월 21일에서 22일로 넘어가는 밤에 모스크바에서는 제 10회 <박물관의 밤> 연례행사가 열렸다. 이날 야간 개장하는 삼백여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은 무료 관람객은 45만 명을 넘었다. 관람객 외에도 전시실 감시인들이 박물관에서 밤을 보냈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노년층 여성들이 전시실 감시인으로 일한다. 우리는 이 할머니 감시인들이 어떻게 초과 근무를 하고 있는지 지켜 봤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우주박물관이다. 마침 비가 내렸지만 입장하려면 긴 줄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다. 내 앞에 서 있는 커플이 말한다. “이건 줄도 아니지? 발렌틴 세로프 전시회 정도는 돼야 줄이지!”

실제로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에서 열린 발렌틴 세로프의 전시회에 들어가려고 2016년 1월 모스크바 사람들은 영하 15도에서도 5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전시회 마지막 날에는 밀어닥친 관람객들로 출입문이 부서졌고 급기야 미술관측은 전시회를 2주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우주박물관

갈리나 가자로바는 <박물관의 밤>이 진행되는 날 우주박물관에서 질서 유지를 담당한다. 여기서 저녁 여덟 시부터 열 시까지 나는 갈리나와 함께 두 시간을 보낸다. 관람객들이 감시인에게 끊임없이 다가와 묻는다. 전시 해설은 언제 시작하는지, 화장실은 어디인지 등등. 갈리나는 모두에게 침착하게 답변하면서 이들이 입장권을 가졌는지도 검사한다. <박물관의 밤>은 무료입장이지만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아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전시실 감시인이 검표한다. 할머니 감시인들은 진정한 통제마왕이다. 질서 위반은 절대 용납이 안된다.

<박물관의 밤> 은  젊은 층이 많이 찾는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젊은 부부들이 보인다. 우주박물관은 규모가 커서 유모차를 전시실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

이날 밤에는 전시작품만 무료 관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0분마다 우주 개발 역사와 소련과 러시아의 저명한 우주 비행사에 관한 무료로 해설해 준다.

마침 러시아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독일 대학생 라라가 무료해설을 기다리고 있다. 고향 베를린에서도 라라는 <박물관의 밤> 행사를 늘 찾는다. 모스크바에서는 첫 경험이다. 모든 것이 그녀의 맘에 든다.  “비가 오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정말 감동적이에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

11시 즈음 나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으로 간다.  20세기 예술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올해 1월 ‘발렌틴 세로프’를 보러 몰려든 인파가 추위에 떨며 줄을 섰던 바로 그 미술관이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도 입구에 늘어선 기다란 줄을 보니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곳 할머니 감시인은 그리 친절해 보이지 않는다. 피곤하고 졸리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에 관해 뭔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는 이름과 부칭을 붙여 ‘나데즈다 이바노브나’라고 부르며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라고 요구한다.(한국에서는 존경의 의미로 보통 **님자를 붙이지만 러시아에선 부칭과 이름을 함께 부르는 게 정중한 스타일이다.편집자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출처 : ANDY FREEBERG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출처 : ANDY FREEBERG

나데즈다 이바노브나와 내 곁으로 수 십, 수백 명의 관람객이 지나간다.  살짝 술에 취한 대학생 무리가 떠들썩하게 들어온다. 이들이 박물관 야간 개장을 찾는 이유는 여기저기 바를 두루 거치는 바 호핑을 무료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노부부가 그림 <붉은 말의 목욕> 옆에서 뭔가로 티격태격 하고 있다. 옆에 서는 한 여성이 7살 딸을 달래고 있다. 보아하니 여자애는 집에가서 자고 싶은 모양이다. 이런 저런 일을 보면 밤시간에 예술을 향유하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트레티야코프 크림스키발(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на Крымском валу)관을 찾은 관람객 대부분은 방문 계획을 잘 짰는지 감시인들에게 거의 다가 오지 않는다. 한 아가씨가 나데즈다 이바노브나와 내가 서있는 곳으로 와서는 샤갈 작품을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묻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샤갈 작품이 전시된 9전시실은 문을 닫았고 샤갈 작품은 전시가 잠정 중단되었다. 아가씨에게 설명해 준뒤 나데즈다 이바노브나는 좀 친절해지려는지 내친김에 자기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는 러시아 박물관에서 감시인으로 일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서 크게 비켜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평생을 일했고 은퇴한 후 박물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출처 : ANDY FREEBERG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출처 : ANDY FREEBERG

밤 두 시가 되자 나는 미술관을 나온다. 출구에서 떠들썩한 미국 관광객 무리를 만난다. 내가 묻는다. “<박물관의 밤> 어때요?”

아이다호에서 온 제니스가 열광적인 손짓을 하며 큰 소리로 말한다. “<박물관의 밤>은 패키지 관광같이 지루하지 않아요. 이런 행사가 있을 때를 맞춰 모스크바에 오다니 우리가 운이 좋은 거죠.”

제니스가 미술관 안에서 그렇게 큰 소리를 냈다면 나데즈다 이바노브나가 따가운 시선을 보냈을 거다. 박물관과 그 안의 할머니 감시인들은 정숙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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