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회의 다섯 가지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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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는 때때로 모순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러시아인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난할 때 스스로를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또는 대다수가 자신을 정교신자라고 하지만,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게다가 신에 대한 믿음이 여기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암흑기’가 시작됐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4분기 결산에 따르면 소비자신뢰지수(CCI)가 -26%까지 떨어졌으며, 이는 4분기 수치로는 2000년 이래 최악의 수치다. 또한 4분기임을 감안하지 않을 경우, 지난 16년간 이보다 나빴던 경우는 2009년 금융위기 때와 2015년 초 통화절하 충격 이후뿐이다.

그러나 위기의 부정적 영향이 자신의 지갑까지 미쳤음에도 러시아인들은 위기가 왔음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여론조사기관 프치옴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내내 사람들은 소득이 곤두박질치고 인플레이션율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봤으나, 동시에 가장 나쁜 때는 지났다는 믿음도 강해졌다. 현재 사람들은 이미 위기가 심각하며 장기화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어려운 때에 프치옴이 조사한 행복지수는 역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응답자의 70%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대답한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모순이 부정적 외부요인을 보상하려는 심리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자기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하다고 말해야 삶이 좀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2. 대통령이 어련히 다 알아서 할까

군사작전에 대한 태도가 겨우 2주 만에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2015년 9월 중순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의 설문에서는 응답자 중 69%가 시리아 군사지원에 반대했으나, 10월 초가 되자 벌써 응답자 중 72%가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 거점 공습 결정을 지지했다.

또한 공습에 찬성한 응답자 대부분은 여기서 러시아가 누구 편이며 누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지도부에 보낸 신뢰와 중동 정세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이 공존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이 어련히 알아서 할텐데’ 심리와 ‘작은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3. 정교신자지만, 신은 믿지 않는다

‘여론(Общественное мнение)’재단의 설문 결과, 고유 러시아인 중 스스로를 정교도라 답한 사람이 72%에 달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 중 4%만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 종교의식에 참여한다. 게다가 정교도의 60%는 자신을 종교적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정교신자라 하는 사람의 약 30%는 아예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는 긍정적인 민족적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정교도’와 ‘러시아인’이라는 두 단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동의어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정교신자’라는 말이 항상 그 사람의 신앙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4.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박

2015년 12월 레바다센터는 러시아인 대부분(약 70%)이 안전을 위해 해외여행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거의 절반이 요즘은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 위험하므로 해외여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다만 여기서 밝혀진 것은, 이 설문의 응답자 중 35%는 최근 5년 간 한 번도 외국에 나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5. 별자리운세가 인터넷보다 더 믿음직해

러시아인에겐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신비의 세계가 글로벌 네트워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러시아인은 인터넷 미디어와 SNS보다 미신과 세상의 종말을 더 쉽게 믿는다.

사후세계를 믿는 러시아인이 약 40%인데 반해 인터넷 뉴스를 믿는 러시아인은 겨우 5%이며, 다른 20%는 인터넷 뉴스를 믿긴 하지만 텔레비전을 통한 ‘검증’을 선호한다. 게다가 러시아인은 초자연적 세계의  현상과 존재 모두를 다 똑같이 믿지는 않는다. 가장 ‘신뢰하는 것’은 미신과 별자리운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전통적 주인공인 외계인과 좀비는 각각 6%와 2% 밖에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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