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조국은 태어난 일본이 아니라 죽고 싶은 곳, 러시아야"

“태어난 곳은 일본이지만 내 조국은 러시아야. 진정한 조국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죽고 싶은 곳이지. 나는 이곳에서 죽고 싶어.” 전쟁포로에서 러시아 시민이 된 나카가와 요시테루는 말한다. (사진제공=로시스카야 가제타)

“태어난 곳은 일본이지만 내 조국은 러시아야. 진정한 조국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죽고 싶은 곳이지. 나는 이곳에서 죽고 싶어.” 전쟁포로에서 러시아 시민이 된 나카가와 요시테루는 말한다. (사진제공=로시스카야 가제타)

96세 러시아인 '사무라이' 나카가와 요시테루

끝없는 칼미키야 초원의 작고 외딴 마을 '유즈니'에서 사샤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저씨의 본명을 말할 수 있는 마을 사람은 비록 몇 안 되지만 말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나카가와 요시테루다. 그는 96세로 아마도 러시아에 살고 있는 유일한 일본인 사무라이일 것이다. 나카가와는 가미카제(자살 특공대) 비행사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싸웠다. 공중전에서 격추당해 포로가 됐을 때, 그는 사무라이의 전통에 따라 하라키리(할복)를 했으나 소련 외과 기술 덕분에 살아남았다.

우리는 잘 가꿔진 정원에서 나카가와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솜씨 좋게 괭이를 사용하며 이랑과 씨름한다. 위장무늬 조끼, 낡고 해어진 모자, 고무장화....

그런데도 그에게는 벼 논에서 일하는 침착하고 부지런한 일본인 같은 뭔가가 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손을 가슴에 포개어 환영하며 나카가와 아저씨는 손님들을 집 안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러시아어가 유창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몰았던 일본 전투기 미쯔비시 A6M Zero. (사진제공=IJN/위키미디어)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몰았던 일본 전투기 미쯔비시 A6M Zero. (사진제공=IJN/위키미디어)

1941년, 일본은 필리핀을 두고 미국과 싸우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서 자원자를 모집했지. 피하는 것은 부끄럽고 야비한 짓이었어." 나카가와가 말한다. 그렇게 그는 군 복무를 하러 떠났다.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나카가와의 부모님에게는 친자식과 입양자식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자식이 있어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여름학교에서 속성 과정을 마쳤지만 제대로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방법조차 모르는 채 나카가와는 비행대로 갔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큰 성공을 거두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약 20대의 미국 비행기를 격추시킨 것이다. 이런 무공을 평가받아 나카가와는 대위가 됐다.

그러나 전선의 상황은 악화돼 갔다. 미군은 일본군을 필리핀에서 내몰았고, 1945년에는 일본과 소련 간에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어떻게든 상황을 바로잡고자 적이 예상치 못한 전술에 매달렸다. 일본 공군은 소위 '신이 일으키는 바람', 즉 '가미카제' 특공대를 조직했다.

그러나 나카가와는 자살공격에서 죽는 것은 면했다. 출격했는데 미군의 고사포를 맞고 격추됐기 때문이다. "비행기엔 파편이 튀었고 결국 교각으로 떨어졌다." 나카가와의 말이 줄어들었다. 패배를 말하는 게 언짢은 듯 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출격이었다. 불구가 된 자살특공대는 일본 공군에 필요 없었다. 살아남은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남사할린으로 파견됐다. 그러나 곧 소련군이 섬을 탈환했고 나카가와는 포로로 잡혔다.

"일본인들은 나를 배신했어." 그는 한숨을 내 쉰다. "마을 책임자가 고자질해 소련 군인들을 데려왔지." 나카가와는 명예를 지키고, 군인의 순수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하라키리'로 더 잘 알려진 할복자살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어찌어찌해서 단도를 입수했지만 포로에게 죽음은 허락되지 않았다. 단도로 배를 푹 찔렀는데 어떻게 이를 본 경비원이 칼을 빼앗았다. "나는 그때 이미 저항할 힘이 없었고 의식을 잃었어. 정신이 돌아왔을 때 배에 꿰맨 자국을 봤지. 나중에 테렌티예프라는 성을 가진 군 외과의사가 나를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할복 후에는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살려냈으니." 나카가와는 지금까지도 놀라워한다.

자살 의식은 죽음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대신 과거를 잘라낸 듯하다. "결과적으로 나는 했어야 하는 일을 했어. 나를 살려낸 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그는 말한다.

할복에서 살아남은 나카가와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 삶에서는 정말로 모든 것이 새로웠다. 문서상에는 나카가와의 실제 출생연도 1919년 대신에 실수인지 1922년이라고 적혔다. 이름도 잘못 기록됐다. 그 결과 나카가와의 이름은 사다오가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샤가 됐다.

나카가와는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할복까지 했어도 그가 포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은 일본에서 여러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명은 이러한 결정에서 나카가와의 편이었던 것 같다. 1949년 일본 포로들이 석방됐을 때 예전의 상처에서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일어났다. 염증이 생긴 것이다.

일본에간 '사무라이' (나카가와 제공)
일본에간 '사무라이' (나카가와 제공)

"병원에서 죽다 살아났지. 정말, 정말 많이 아팠어." 나카가와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리고 또다시 소련 의사가 이 일본인을 살려냈다. 다만 이번에는 여자 의사였다. 그녀는 포로가 완쾌할 때까지 간병했다. "나의 여의사님"이라며 나카가와는 그리운 그녀를 떠올렸다. 더 이상 포로가 아니었던 일본인과 의사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자신을 구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나카가와는 여의사에게 자신의 유일한 보석인 금니를 선물했다. 둘이 결혼까지 했다. 소련에서 떠나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됐다. 이전의 사무라이는 맞서 싸웠던 국가의 국민이 됐다. 새로운 조국의 어마어마한 광활함에 매혹된 나카가와는 새로운 조국을 스스로 발견하기 시작했다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일했지. 극동·시베리아·우즈베키스탄·다게스탄·스타브로폴에 가 봤어.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닌 거지" 그는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나열한다. 잘못 세고는 웃는다.

그의 구원자인 '여의사님'은 이러한 여행 열정을 견디지 못했다. 처음에는 따라다녔지만 지쳐버렸다. 결국 헤어져야 했다. 그리고 나카가와는 긴 방랑 끝에 시베리아의 칼미키야에 오게 됐다.

"트랙터와 불도저를 잘 다뤄 초그라이스크 저수지를 만드는 데 와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 제일 처음으로 이곳 낚시는 어떠냐고 물었지. 낚시를 정말 좋아하거든." 사무라이 낚시꾼이 장난스럽게 웃는다. 참고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사샤 아저씨는 물고기를 제일 잘 낚는 낚시꾼으로 유명하다. 그가 한 수 가르쳐 주면 다들 명예와 큰 행운으로 여긴다.

"사샤 아저씨, 어떻게 그렇게 장수하셨어요?" 나는 궁금했다. "비밀을 말해 주세요. 무슨 비밀스러운 사무라이 체조라도 하시나요?" 사샤 아저씨는 슬쩍 농담을 했다. "하지. 텃밭에서 씨도 심고 물도 주고 잡초와 싸우고 수확을 하지." 그러더니 진지하게 덧붙였다.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해. 그것만이 우리를 살아있게 해 주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빨리 죽어. 살아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어쨌든 나카가와는 일본에 한번 가기로 결정했다. DNA 분석을 하고 나서야 사샤 아저씨가 실제로 나카가와 요시테루임을 일본 측에 증명할 수 있었다.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사무라이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방문은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신문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고, 그의 친척에 대해 썼으며 일본에 남아 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친척들과 고위 공직자들을 만났고, 일본 장관과 사케를 마시고, 내 무덤에도 가 봤지." 그는 침착하고 어딘가 무심한 태도로 말한다. "물론 일본은 전혀 다른 곳이 됐어. 이미 낯선 나라야. 지금 더 걱정되는 것은 다른 일이야. 연락이 끊긴 아들과 딸을 죽기 전에 찾고 싶어." 나카가와는 고백한다.

"사샤 아저씨,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도 일본과 러시아 중에 어떤 나라를 조국으로 생각하세요?" 나이 든 사무라이는 잠시 생각한다. "진정한 조국은 사람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죽고 싶은 곳이지. 나는 이곳에서 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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