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사하로프 대로'에 정치탄압 희생자 기념비 건립 예정

(사진제공=비탈리 벨로우소프/리아 노보스티)

(사진제공=비탈리 벨로우소프/리아 노보스티)

러시아 정부가 소련 시절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를 모스크바 중심부에 건립키로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엘라 팜밀로바 인권 담당 전권대표가 지난 15일 인테르팍스 통신에 밝혔다. 러시아 인권운동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와 같은 기념비를 설립을 요청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정치탄압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는 사하로프 대로(проспект Сахарова)에 세워진다. 이곳은 상징적인 장소다. 유명한 인권운동가들과 스탈린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운 투사들의 명단 맨 꼭대기줄에 있는 것이 다름아닌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개발자로 소련 과학 아카데미 정회원이었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이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모스크바의 자유주의 성격의 대규모 집회와 행진들이 바로 이곳 사하로프 대로에서 열려왔다.

"우리는 몇 가지 안을 놓고 논의하다 사하로프 대로가 최적의 장소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푸틴 대통령은 준비 작업 팀의 제안에 동의했다. 정치적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고 팜필로바 전권대표가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이미 몇 가지 기념비 설계안이 나와 있으며 금년말까지는 기념비 건립이 완료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세니 로긴스키 역사·계몽 및 인권 단체 '메모리얼' 대표는 기념비 건립이 러시아에 굉장히 중요한 행보라고 Russia포커스에 설명했다. '이 기념비에 관한 논의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뒤를 이어 소련 지도자가 된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 시절 이미 시작됐다. 우리 단체는 기념비 건립을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채택돼 매우 기쁘다." 로긴스키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역사가 아무리 비극적이더라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이번 행보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수백만 명이 살해됐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는데도 그에 대한 기억은 없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는 테러로 얼룩진 도시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총살됐고 굴라크(ГУЛАГ,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졌지만,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기념 현판조차도 없다." 로긴스키 소장의 말이다. 그는 "부정을 기억하지 않고 법치국가를 건설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모스크바에는 정치탄압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가 하나 있다. '솔로베츠키의 돌(Соловецкий камень)'로 불리는 이 기념비는 1990년 KGB 본부 건물이 있는 루뱐카 광장(Лубянская площадь) 소공원에 설치됐다. (솔로베츠키는 러시아 북서부 아르한겔스크 주 백해 연안의 섬마을로 1920~30년대 정치범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던 곳 - 편집자 주)

인권단체 '메모리얼'의 자료에 따르면, 소련 시절 전반에 걸쳐 정치탄압으로 희생된 사람은 최소 1,100만 명에서 최대 3,900만 명에 이른다. '메모리얼'은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투옥됐거나 총살된 사람들만 아니라 1932~1933년에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과 대기근으로 사망한 사람들도 탄압 희생자로 간주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기념비 건립 결정이 대다수 국민 사이에서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소련의 산업화를 실현한 장본인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스탈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을 바꿔놓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념비는 스탈린에 반대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탄압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다. 나는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대체로 스탈린을 언급하지 않으려 할 것으로 본다. 기념비 구상이 반스탈린 성격을 띠지는 않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스탈린 공포정치 시절 처형 장소였던 모스크바 근교의 부토보 사격훈련장(Бутовский полигон)을 방문한 바 있다." 파벨 살린 러시아 정부 산하 금융대학교 정치연구센터 소장의 말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이와 같은 행보를 통해 자유주의 정치 세력을 자신의 주위로 규합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외신기자들을 통해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학자이자 TV방송 진행자인 니콜라이 스바니제는 이번 결정이 러시아 당국이 의고주의와 보수주의 비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러시아 지도부 주위에는 스스로를 애국자라 부르는 스탈린주의자들 같은 인권보호와는 거리가 먼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념비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러시아 지도부의 의지, 그리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세력과 동등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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