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전야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분위기

(사진제공=Ullstein/Vo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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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법, 상점 앞에 늘어선 줄, 남성 노동을 대체한 여성 노동... 10월 혁명 전야의 러시아를 특징 짓는 현상들이다. 식료품 부족으로 상점 앞에 엄청난 줄이 늘어서는 것이 흔한 풍경이었지만 고급 레스토랑들, 은제 식기, 귀금속 악세사리, 꽃과 같은 사치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100년 전 1915년 초였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다섯 달째였다. 밖에서 볼 때 러시아는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갔다. 러시아 군대는 베를린 진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전선에서 훈장을 수여하는 데 상당 시간을 보냈거나 아니면 야전병원을 순시했다. 그의 후계자인 황태자의 건강 상태는 좋았고 쾌활했다. 두마(의회)는 모든 점에서 황제와 정부, 군대를 지지했고 애국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불행을 예고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페트로그라드(1914년~192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름)의 삶에서 일어난 평범한 사건들 중에서 다가오는 대혼란의 근원을 추측하기는 어려웠다. 1917년의 새로운 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아직 2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이 혁명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전쟁 중에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연극 공연, 특히 가벼운 장르 공연 표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인기 레스토랑 '빌라 로데'의 시즌 개막식에는 페트로그라드 전체가 몰려들었다.

반쯤 아사 상태에 있던 도시에서는 고기와 설탕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아침마다 장사진을 이뤘고 어딘가에서는 빵이 벌써 동나기 시작했다. 또 매일 수십 건의 장례식이 치러지면서 꽃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꽃집들은 금전적으로 여유 있고 씀씀이가 헤픈 새로운 고객층을 얻었다.

전쟁 중임에도 페트로그라드 사람들은 파리의 최신 패션으로 차려 입었다. 거리의 공기 속에는 값비싼 이집트산 담배와 인기 향수 '겔랑'의 향기가 울러퍼졌다.

하지만 수요가 가장 많았던 상품은 귀금속이었다. 보석상들은 매일 수십만 루블을 벌어들였다. 주로 값비싼 사치품들이 팔렸으며 평범한 상품은 인기 없었다. 다이아몬드가 달려 품귀 현상을 빚었고 무게가 나가는 은제 식기류에 대한 수요도 많았다. 사람들이 물가상승으로부터 자신들의 저축을 지키려 했음이 분명했다.

금주법

전쟁 선포 직후인 1914년 8월 20일 러시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금주법을 실시했다. 이는 전시 예산 수입에서 다섯 번째로 큰 부분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경찰이 음주와의 전쟁에 돌입하자 러시아 사회는 금주법을 피해갈 방법을 간구하기 시작했다. 금주법으로 인해 투기와 밀주, 가짜 주류가 성행했다.

금주법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다. 야전병원용 알코올 판매는 허용됐기 때문이다. 의료용 알코올은 처음에 주류로 간주되지 않아 약국에서 자유롭게 판매됐다. 약국들은 이전에 연간 20~30통의 알코올을 소비했지만, 이제는 300~400통이 필요했다.

지식인 애주가들은 성분의 70%가 알코올인 발모촉진제를 애용했다. 노동자들은 약국에서 싸구려 오데코롱을 샀다.

대형 레스토랑 가격표에는 '꽃 25루블', '자동차 50루블' 같은 새로운 항목들이 등장했다. 이것이 알코올을 뜻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시행된 금주법으로 인해 수백만 루블의 돈이 국가예산에서 빠져나가 부당 이득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여성의 노동 대체

당시 신문 '페트로그라드스키 리스토크(Петроградский листок)'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월 3일 아침 트로이츠키 다리에서는 여자들이 모는 말 썰매가 교외 쓰레기 매립지로 눈을 실어 날았다. 행인들은 질서 정연하고 욕설 한 마디 내뱉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거리와 광장에서 눈을 치우는 청소 도급업체들이 여자들을 고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성들은 전선에 동원된 마부들만 아니라 문지기와 잡역부, 마루 청소부, 바텐더, 점원, 차장, 그리고 공장 노동자 1/3을 대체했다. 그들의 남편들은 전선에 나가거나 가까운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거나 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자들보다 돈을 적게 받았으며 주로 컨베이어에서 일했다. 전시에는 물가가 평균 2~2.5배 올랐는데, 일부 식료품 가격은 그보다 더 올랐다(버터 가격은 8배, 설탕과 소금 가격은 5배 올랐다). 반면 임금 인상은 이보다 적었다(약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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