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휘몰아친 ‘메밀 파동’ 원인은?

(사진제공=알렉산더 류민/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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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메밀 파동’이 휘몰아치고 있다. 사람들이 메밀 사재기에 나서자, 상점들은 줄줄이 메밀 가격을 올리고 있다. ‘메밀 파동’을 계기로 러시아인들에게 왜 하필 메밀이 그토록 중요한 품목이 됐는지 살펴보았다.

마지막 메밀 한 봉지가 지금 막 팔려나가는 중이다. 한 중년여성이 마트 선반 깊숙한 곳에서 메밀 봉지를 집어 들고 자신 있게 계산대로 향한다. 메밀이 왜 동이 났냐는 질문에 이 여성은 '뭐, 당연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다. 다른 대형 식료품점에서도 마찬가지다. 체인형 마트가 아닌 생필품 복지할인 상점(социальные магазины) 같은 경우 메밀이 아직 많이 쌓여 있지만, 봉지당 최저가가 60루블 이상이라 싸다고 볼 수도 없다. 지난 11월 26일 이미 러시아 통계청은 월초와 비교할 때 메밀 가격이 48.3%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국민들은 값이 크게 오르지 않은 쌀, 파스타, 콩 등 다른 곡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메밀 사재기에 나선 것이다. "10월에 이미 메밀 수요가 1.5~2배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사재기가 정점에 달했다"고 대형 식료품 체인점 몇 곳을 운영하고 있는 Х5 Retail Group의 공식 대변인 블라디미르 루사노프가 말했다. 특히 연금생활자들이 메밀 사재기에 가장 열심이라고 그는 말한다. "메밀을 싸게 파는 곳은 거의 없다. 게다가 메밀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한 공급업체들이 물량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고 러시아 최대 할인 유통점인 '아샨'의 대외협력이사 마리야 쿠르노소바가 말했다. 한편, 독일계 소매유통업체 METRO Cash & Carry의 기업 및 대외협력실장 옥사나 토카레바는 "비싼 브랜드 메밀도 있고 싼 메밀도 있다. 지금은 상황이 어느 정도 정상화됐다. 가격 폭등은 이미 멈췄다. 하지만 메밀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위기 예감

2014년 메밀 파동은 러시아산 메밀의 절반이 재배되고 있는 알타이주에서 흉년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됐다. 유통업체들은 메밀 매입가가 오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국민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곡물인 메밀을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메밀 가격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2010년 자연재해 때가 마지막이었다. 가뭄으로 수확량이 크게 줄어 심리적으로 중요한 식료품인 메밀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었다. 당시 러시아 연방반독점청 조사 결과 도매업체들의 담합으로 메밀 가격 상승이 유발된 것으로 밝혀졌었다.

공식 자료를 보면 이번에는 2010년과는 달리 메밀 물량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러시아 농업부는 '모두에게 충분하다!'는 제목으로 '합리적 소비 기준'이 1인당 연간 메밀 3.5kg임을 고려할 때 러시아 국민의 1년 소비량은 메밀 55만 톤이면 충분하고 이미 탈곡량이 74만 4,600톤으로 수출도 가능할 정도로 비축량이 충분하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농업부가 발표한 1인당 3.5kg은 계산상의 평균치에 불과하다. 메밀죽 1인분에 메밀 80g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일주일에 두세 번 메밀죽을 먹는 사람은 넉 달 만에 일 년 치 할당량을 다 먹어버리게 된다. 이렇게만 계산하더라도 1년에 메밀 10kg, 가격으로 따지면 600루블 (12달러) 어치를 먹게 된다.

사실 육류, 야채, 유제품 가격 상승이 대부분의 러시아 국민에게 훨씬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이렇게 물량이 동날 정도인 적은 없었다. "다른 상품들도 가격이 상승하면 사람들 사이에 동요를 일으킨다. 하지만 명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특정 타겟층들이 그 대상인 경우가 많다. 반면 메밀은 대중적인 품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겁을 먹게 된 것"이라고 사회정책독립연구소의 릴리야 옵차로바 소장이 설명했다. "지난번 맞제재로 일부 수입식료품 금수조치가 취해졌을 때 이탈리아 파스타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수입 생선 통조림, 청어, 정어리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전략적 음식

메밀이 국민 음식이며 주식이 된 데에는 메밀을 애국심과 수입대체의 표상으로 내세운 정부의 책임도 부분적으로 있다. 10월 초 니콜라이 표도로프 농업부 장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빵, 우유 그리고 메밀죽"이라며 러시아 국민요리인 메밀죽 섭취를 권장했다.

옵차로바 소장도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이 다른 것이 아닌 메밀 사재기에 나선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한다. 파스타 같은 것과 비교할 때 훨씬 건강에도 좋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이번 메밀 파동은 위기나 루블 약세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전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 루블 붕괴를 경험한 사람들은 지출을 줄이는 대신에 물건을 쟁이는 식으로 돈을 써버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슈퍼마켓마다 메밀이 동이 나버렸다는 것 말고는 아직 메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아직 메밀 파동을 독립적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사회여론조사기관들은 없다. 러시아 여론재단(ФОМ)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를 살펴보면 러시아 국민은 전반적으로 모든 식료품의 가격이 올랐다고 느끼고 있다. 11월 설문조사에서 러시아 국민의 91%가 주요 식료품과 상품, 서비스 가격이 올랐다고 답했으며, 87%는 물가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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