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성의 날... "평등과 권력 대신 사탕과 꽃"

(사진제공=이타르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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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성들이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3월 8일은 그들을 위한 날이다. 밝은 색 튤립과 노란 미모사, 초콜렛 상자를 옆구리에 낀 민족과 나이를 불문한 남자들로 모스크바와 러시아 전역의 도시 거리가 바빠진다. 이날 남자들이 준비한 선물은 아내, 애인, 딸, 동료, 어머니 등 그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해 주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1966년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3월 8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2주 전인 2월 23일 '남성의 날'을 치른 러시아 여성들이 그에 상응하는 공휴일로 '여성의 날'을 지정한 것에 기뻐했을까? 러시아의 옛 전통과 여성의 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애당초 여성의 날은 여권신장운동과 연관된 정치적 행사로 제정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는 지금까지 한반도 여성의 날을 지지한 적이 없다.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근무 여건 향상을 위해 투쟁하던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1909년 주창했다.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던 러시아 여성들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13년 여성의 날을 기념할 수 있었다. 소련 최초의 국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10월 혁명 이후 여성의 날을 소련의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소련의 여성 조각가 베라 무히나가 만든 '노동자와 집단농장 여성일꾼의 동상'(국영영화사 모스필름의 로고에 등장하는 동상)에 표현된 것처럼 여성들이 남자들과 나란히 낫과 망치를 들고 새로운 사회 건설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여성들 중 일부는 산더미처럼 쌓인 사탕과 초콜릿을 먹거나 기념일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면 시들어버린 꽃다발을 갖다버리는 것이 별로 기쁘지 않다고 토로한다. 일년에 하루가 아니라 항상 그런 존경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한 러시아 여성의 날이 여전히 페미니즘 운동의 모든 상징을 간직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여자가 사업을 하거나 관리직에 오르는 경우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의 목소리도 있다.

30세의 여성 사업가 마리야는 여성에 대한 대우가 사실상 10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1년에 하루 파묻힐 정도로 많은 축하카드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해서 나머지 364일 그녀의 삶이 더 편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는 "남자들과 사업 협상을 할 때면 동등한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그들보다 약한 여자로 대우받는 느낌이 종종 든다"고 불평하며 러시아 여성의 날은 여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보여주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욕망에 편승해 돈을 벌려는 꽃과 향수, 초콜릿 등을 판매하는 기업체의 배만 불려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일년에 한 번이 어디야?!

위와 같은 말은 여러 공식 수치로 증명된다. 예를 들면 작년 모스크바시 상업서비스국은 여성의 날을 앞두고 꽃 도매가가 50-60%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컨설팅 회사인 마르 컨설트 사(MAR Consult Compalny)는 모스크바 남성들이 사랑하는 여성들을 위한 선물에 5억 달러를 소비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한편 크렘린궁에 항상 보조를 맞추는 현재의 러시아 정교회는 여성의 날을 서구의 잔재로 여기며 인정하지 않는다.

러시아 정교회는 발렌타인 데이나 핼러윈 데이처럼 여성의 날을 근절하려 하지는 않지만, 정교회 신자들에게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대신 정교회 축일을 기념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다가 1년 전 정교회는 3월 8일을 '성 마트료나의 날'로 지정하고 케이크를 굽고 먹는 축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일부 정교회 신자들은 여전히 '세 마리아의 날'을 5월 4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기념하고 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정교회 부제 신부의 아내인 스베틀라나는 여성의 날을 맹렬하게 반대하는 사람 중 하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꽃이나 다른 선물을 받고 싶지 않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내가 이런 모습을 가지게 만들어 주셨는데, 왜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선물을 받고서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또한 "여성의 날은 경력에 목을 매는 이기적인 여자들이 만든 페미니즘 기념일이다. 여성을 집안의 안주인, 사려깊은 어머니, 애정깊은 아내로 보는 러시아의 옛 전통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성의 날에 대한 불만을 몰래 감추고 사는 이들도 있다.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동성애 선전 금지법, 줄여서 '동성애 금지법'이 채택된 이후에 그렇다.

은행에서 근무하며 성전환 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이리나는 여성의 날이 다가올 때면 남성 동료들이 건네는 살가운 인사와 축하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말한다.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이 기념일을 차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해도 그런 생각을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다. 해고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들이 떠받들어주는 게 싫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 여자친구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있으니 나도 모르는새 대세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성 10명 중 7명이 여성의 날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고 답했다. 왜냐하면 여성의 날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아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 지 알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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