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회의 ‘뜨거운 감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РАН) 개혁 논의 가을로 늦춰져

모스크바 소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본관 건물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모스크바 소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본관 건물 (사진제공=이타르타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학자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올 9월까지 휴전이 선언됐다.

지난 5일 금요일 러시아 하원은 정부가 상정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РАН, Российская Академия Наук) 개편 법안을 전체 의원 450명 중 344명의 찬성으로 2차 심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러시아 학계의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2007~2011년 기간에 톰슨로이터 색인에 등재된 러시아 학술 문헌의 수는 13만 2천101건, 인용지수는 31만 5천501건이었다. 동 기간 미국에서 출판된 학술 문헌의 경우 각각 160만 건과 1,140만 건을 기록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10년 간 끊임 없이 계속돼 왔고, 아카데미 회원들 스스로도 과학아카데미의 활동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과학아카데미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늑장을 부리다가 올 6월 하순에야 문제의 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국가두마(하원)의 하계 정기휴정 1주일 전인 지난 달 28일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의견 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정부는 1724년 설립된 아카데미 개혁에 대한 법안을 부랴부랴 하원에 제출했다.

당초 입안자들은 하원이 8주간의 휴정기에 돌입하기 전에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자들의 거리 시위가 계속되자 푸틴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포르토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원장을 만났고 그 결과 법안의 3차 심의와 표결이 올 가을로 연기되었다.

법안의 본문 안에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연구활동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구체적 조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다. 법안의 2차 심의 전날 일간 이즈베스티야紙는 드미트리 리바노프 교육과학부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는데, 인터뷰에서 장관은 "(법안이 통과되면) 그 다음에는 연구소, 실험실, 개인 연구자들을 어떻게 재정적으로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일련의 다양한 방안들이 마련될 것이며 연구 입찰 및 연구지원금 제도도 마저 정비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과학부 장관이 언급한 일련의 후속 조치들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이번에 하원에 상정된 정부 법안이 개혁과 관련해 공개된 전부다. 법안에 명시된 개혁의 골자는 과학아카데미 활동에 대한 감사 실시와 지금까지 과학아카데미가 직접 관리해온 재산의 운영에 대한 전권을 연방정부의 위임을 받은 연방 행정기관으로 이전하는 데 맞춰져 있다.

도마에 오른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소유 재산은 11개 분아별 지부(수학, 물리학, 사회과학 등)와 3개 지역별 지부, 그리고 15개 지역 연구센터 산하의 수백 개에 달하는 건물이다. 일부 부동산은 모스크바의 알짜배기 땅에 위치해 있다.

법안 문안에 따르면,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기관들은 정부가 권한을 위임한 행정기관 관할로 이관되게 된다.

"저들은 과학아카데미의 운영을 관리들한테 맡기려는 것인데, 과연 관리들이 과학에 대해 뭘 알겠습니까?" 저명한 역사학자인 유리 피보바로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의 이 성명 속에서 우리는 정부의 개혁안이 왜 학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는지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는 "타이밍이 절묘하지 않습니까? 원장과 이사회를 선임해 놓고 무더운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자마자 급습을 감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고로 1991년부터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원장직을 맡아 온 유리 오시포프를 대신해 지난 5월 29일 블라디미르 포르토프가 신임 원장으로 선임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개혁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하지만 학자 수백 명이 거리로 나가 항의 집회를 벌이자 정부도 한 발짝 물러섰다. 지난 3일 푸틴 대통령은 "과학아카데미 소유 재산을 관리하고 아카데미 산하 연구소 소장들의 임명권이라는 사실상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게 될" 관리국의 장 자리를 포르토프 원장에게 제안했다.

하루 뒤인 4일 하원 의원들과 회동 후 포르토프 원장은 만족스러운 합의가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아카데미를 '학자들의 모임клуб ученых'과 '연구소들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е институты'로 분리하는 조항은 삭제되고 산하 연구소들의 감독권은 과학아카데미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포르토프 원장은 이에 대해 "법안이 한층 개선돼 우리로서는 더 합리적이고 유리하게 바뀌었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와 별개로 독립 운영되는 분야별 아카데미 5곳 중 의학 아카데미(РАМН)와 농학 아카데미(РАСХН) 두 곳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편입시키는 안이 고려 중이다. 건축 아카데미(РААСН), 교육 아카데미(РАО), 예술 아카데미(РАХ) 세 곳은 독립 기관으로 유지된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자료에 따르면, 이상 6개 아카데미 산하에 약 900개의 학술기관이 있으며 여기서 종사하는 인원은 총 13만 6천 명, 그 중 9만 5천 명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고용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아카데미 6곳에 할당된 예산 총 780억 루블(24억 달러) 중에서 600억 루블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배정됐고 농학 아카데미는 90억 루블, 의학 아카데미는 77억 루블을 배정받았다.

앞으로 3년 안에 객원 회원член-корреспондент(준회원кандидат в академики) 칭호가 폐지될 예정이며, 준회원은 모두 정회원으로 승격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502명에게 지급되는 월 호봉 5만 루블(1,500달러)을 현상유지시키고 새롭게 탄생할 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 전원의 호봉 수준도 동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안을 고려 중이다. .

러시아의 권위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콘스탄틴 소닌 러시아경제대학(Российская экономическая школа) 부총장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과학아카데미를 현재의 모습 그대로 존속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별 할 말이 없다. 최근 20년 간 러시아에서 경제학은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소들과는 별개로 구축돼 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과학아카데미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경제학 분야에 있어서는 연구의 양과 질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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