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의 “회색인들”

(사진제공=리아노보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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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의 지하경제 종사자 수는 2천 3백만 명에 달하며 가까운 장래에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이는 세금 탈루, 사회보험 미가입은 물론이고 경제성장 둔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공식적인 경제활동 비율은 내려가고 지하경제 비율은 올라가면서 실업률은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하경제의 존재는 고질적인 사회문제의 하나지만 그 동안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 고등경제대학(모스크바)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올가 골로데츠 부총리의 신랄한 발표로 여론의 관심을 끌게 됐다. 연금 개혁, 특히 재원 부족 사태를 논의하던 이 자리에서 골로데츠 부총리는 생산가능연령대의 2천 3백만 명이 어디에 어떻게 고용돼 있는지 정부는 모르고 있으며 이들은 세금 및 연금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경찰, 조세 및 연금 제도, 사법권 등 여러 가지 ‘공식’ 제도의 붕괴로 고용 “회색” 지대가 확대되고 있다.

지하경제를 완전히 뿌리뽑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서유럽과 북미 국가들의 지하경제 고용률은 총 고용인구 중 15%,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은 15~30%,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은 최대 80%에 달한다.

러시아의 지하경제는 2000년에서 2011년까지 근 10년 사이 덩치가 약 1.5배 커졌다. 같은 기간 지하경제 고용인구는 350만 명이 증가한 반면 양지의 기업 고용인구는 대략 500만 명이 감소했다. 이는 기업들의 인원감축 규모가 신규 직원 채용 규모를 넘어선 반면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지하경제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농업과 제조업 분야의 지상경제 고용률이 큰 폭으로 감소했습니다. 근로자들이 상업, 건설, 보수정비와 관련된 반지하경제로 옮겨간 결과인데요. 지하경제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기술도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문교육·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이쪽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인데 어떤 경우든 대개 일용직으로 일을 합니다. 밭갈이, 담장 수리, 집수리 같은 일이 생길 때 이들을 찾게 되지요. 이들은 지상경제와 지하경제, 고용인구와 실업인구의 경계를 활발히 넘나들고 있습니다.” 고등경제대학 산하 노동연구센터 소장 블라디미르 김펠손은 이렇게 말했다.

동전의 뒷면... ‘낮은 실업률’

경제위기에 따른 사회현상들은 지하경제의 덩치를 더 커지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이 지하경제로 내려가는 것은 대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지하경제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상경제가 사람들을 떠밀어내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기업이 인원을 감축하면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저축한 돈이나 부양해줄 친척이 없다면 새로운 수입원을 찾아나서는 수밖에 없지요.” 김펠손 소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설문 대상자의 47%가 음지에서 일해도 상관없다고 답한 반면 31%는 현금으로 보수를 주는 곳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지하경제가 이처럼 성장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부정부패다. 러시아경제대학의 이리나 데니소바 교수는 “기업 설문 조사 결과, 만성적인 부정부패 때문에 시장 접근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 양지에서 사업을 운영·확대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적당한 뇌물을 주지 못해서 사업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걸림돌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야만 ‘나쁜 일자리들’을 밀어낼 수 있는 생산성 높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자리는 대부분 지상경제에 포함되겠지요”라고 말한다. 

인구 노령화 및 기업 부문에서 권고사직당하는 중장년층 인구(연금수령 직전 연령층과 연금수령 연령층)의 증가가 지하경제 고용률이 늘어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러시아인들은 지하경제에 특별히 적대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에는 지하경제라던가, 뒷돈, 탈세 같은 것에 관대한 독특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이런 인식에 변화가 올 수 있을 겁니다.” 재무대학 사회정치학부 학장 알렉산드르 샤틸로프는 강조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하경제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펠손 노동연구센터 소장은 “지하경제 때문에 GDP(국내총생산)의 일정 부분이 누락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하경제 고용이 사라진다면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생겨나 국가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넓게 볼 때 지하경제 고용은 긍정적 역할도 담당할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지하경제 고용 형태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은 스타트업(신생기업)의 성공사례를 보면 그렇다. “이런 사업들이 성장하고 합법화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이들로부터 뭔가 새로운 것이 탄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과정을 가로막는 법규와 규칙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김펠손 소장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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