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母 묘 모스크바에...이국에서 생을 마감한 北 ‘백두혈통’의 비극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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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이 개인 용무로 수 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운명은 모스크바 서부 트로예쿠로보 묘지에 안장돼 있는 모친 성혜림의 운명과 매우 닮아 있다. 어쩌다가 북한 최고 지도자 일가의 구성원들이 이처럼 해외로 뿔뿔이 흩어져 불운하게 생을 마감하는 신세가 됐을까?

지난 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만 45세)이 살해됐다. 현 북한 최고지도자의 형임에도 그는 사실상 오랜 세월을 몸을 숨긴 채 해외 도피생활을 해왔다. 두 형제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거에도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정남은 결국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 땅에서 살해됐다.

김정일의 첫 부인 성혜림의 아들

김정남의 모친은 북한의 유명 여배우였던 성혜림으로 그녀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로 딸까지 두었던 성혜림이 당시 김일성의 후계자였던 김정일의 눈에 든 것이다. 김정일은 그녀를 이혼하게 만든 후 그녀와 결혼했다. 부친 김일성이 두 사람의 결합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자 김정일은 결혼 사실을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1971년 김정남이 태어났지만, 그후 결혼은 깨지고 1974년 김정일은 김영숙과 결혼했다.

당시 성혜림은 아들 김정남을 김정일과 자신의 여동생에게 남긴 채 해외로 떠났다. 밝혀진 정보에 따르면, 성혜림은 소련(그후 러시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한국 언론에 그녀의 정확한 모스크바 주소가 보도된 적이 있다(모스크바, 바빌로바 거리, 85번지).

이복동생에게 권력투쟁에서 밀려

사진제공: Getty images사진제공: Getty images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김정남의 모스크바 방문이 얼마나 잦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모스크바를 들락거린 것은 확실하다. 그는 학창시절 대부분을 서유럽에서 보냈고 그후 북한으로 귀국했다. 상당히 오랜 기간 김정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여겨졌던 그는 귀국 후 후계자 수업에 들어갔다. 그러던 2001년 대형 스캔들에 휘말린다. 일본으로 입국하려다 위조여권 소지로 체포된 것이다. 북한으로 돌아온 후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의 눈밖에 났다. 그 결과 3남인 김정은이 후계자로 정해졌고 장자인 김정남은 망명의 길을 택했다. 주 거주지는 마카오였으며,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여기저기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묘지에서 영면한 성혜림

성혜림은 1990년대부터 유방암을 앓았다. 그후 오랜 기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02년 5월 17일 유방암으로 세상을 떴다. 북한 측은 처음에는 시신을 북한으로 이송하려 했다. 그후 시신을 화장해서 유골을 이송했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묘지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측은 그녀를 모스크바에서 예를 갖춰 매장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에 따라 소련과 러시아의 많은 명망가들의 묘가 안치 돼 있는 트로예쿠로보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망자에 대한 예우를 갖춘 셈이다. 한국 언론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관련 서류에는 ‘장례식을 주관한 기관’으로 주러 북한대사관으로 적혀 있다.

참고:

트로예쿠로보 공동묘지(Троекуровское кладбище)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묘지의 지부다. 노보데비치에 주로 소련 시절의 명망 높은 인사들이 안치돼 있다면, 트로예쿠로보에는 소련과 그 뒤를 이은 현대 러시아의 유명인들이 안치돼 있다. 야권 정치가 보리스 넴초프, 기자 안나 폴리콥스카야 등의 묘가 이곳에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명망있는 묘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 수상한 대목이 있다. 나중에 세워진 묘비에는 성혜림이라는 본명이 새겨져 있지만, 장례 문서에는 사람 이름이 ‘오순희’라고 돼 있다. 묘비에 새겨진 생몰년도 1937년 1월 24일 ~ 2002년 5월 18일도 이상하다. 실제 사망일은 5월 17일이다.

사진제공: 올레크 키리야노프사진제공: 올레크 키리야노프

묘지 관계자에 따르면 성혜림의 묘비는 2005년 김정남이 북한 노동자들을 데려와 직접 세웠다. 묘비 뒷면에는 ‘묘주 김정남’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잊지 않았다.

트로예쿠로보 묘지 관리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는 북한 대사관 직원들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동양인들이 묘소를 자주 찾았으나 최근 몇 년새 찾는 이가 줄었다. 모친을 타국에 묻은 김정남도 해외에서 피살됐다. 아직 말레이시아 당국이 그의 시신 인도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또한 타국 땅에 묻히는 신세가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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