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꿈에도 몰랐을 1917년 혁명 이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 부류 매춘부

‘증명서’ 매춘부는 누구이고 ‘양식서’ 매춘부는 누구인가, 그들은 신문에 어떤 광고를 냈는가, 왜 ‘비밀’ 매춘부는 가장 불행했나. 20세기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매춘 여성들의 삶을 알아본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당시의 다양한 사회상을 소개하는 기획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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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 최초의 공창 거리가 등장한 때는 19세기 중반이다. 1843년 몸을 파는 여성들을 공식 등록하는 최초의 의료-경찰 위원회가 조직됐다. 또한 유곽의 생활여건 및 매춘부들의 권리와 의무를 정한 ‘윤락일람표’(1844)가 등장했다. 20세기 초반 즈음에는 여성들이 일하는 장소도, 가장 많은 매춘부의 유형도 바뀌었지만 이 반쯤 합법적인 세계의 기본적인 위계는 유지됐다.

여주인, 유곽의 소유자

유곽에 정기적으로 거주하는 30~60세의 여성으로 시설의 규칙 준수, 여성들의 위생 및 문서기록을 감시할 의무가 있었다. 서비스 요금 계산에 따른 여주인의 의무도 미리 정해졌는데, 3/4은 여주인이 갖고, 1/4는 매춘부가 가져가게 돼 있었다.

많은 여주인들은 매춘부들이 처한 정치, 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악용해 오랫동안 처벌받지 않으면서 그들을 착취했다. 그래서 매춘부들은 노예상태에 놓이게 됐으며 단지 빚 때문에 유곽을 떠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여주인의 주 의무는 매춘부들을 의료-경찰 위원회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증명서 매춘부

매춘부들이 등록되면 신분증명서는 작고 얇은 책을 닮은 노란색 증명서로 바뀌었다. 그래서 ‘증명서 매춘부’란 말이 나왔다. 이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의료검진을 받아야 했고 한 유곽에 소속돼야 했다. 이 외에도, 19세기에 당국은 급료지급장부를 도입했다. 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 덕분에 매춘부들은 돈을 벌고 예전처럼 여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종속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증명서 없는  매춘부들. 출처: 기록사진증명서 없는 매춘부들. 출처: 기록사진

증명서 매춘부 중에는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교육받은 여성들도 있었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업소와 여인숙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쿠프린은 중편소설 ‘부선장 리브니코프(Штабс-капитан Рыбников)’에서 고급유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 업소는 비싼 유곽과 사치스러운 클럽 중간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화려한 입구, 대기실의 곰 박제, 카펫, 실크 커튼과 샹들리에, 연미복을 입고 장갑을 낀 하인들이 있었다. 남자들은 레스토랑이 닫은 후 이곳으로 밤을 마무리하러 왔다. 이곳에서는 카드게임도 벌어졌고, 값비싼 와인이 있었으며 자주 바뀌곤 하는 아름답고 싱싱한 여성들이 언제나 여러 명 대기하고 있었다.’

양식서 매춘부

어떤 유곽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활동하는 매춘부는 ‘양식서 매춘부’라 불렸다. 이들의 대부분은 등록을 위해 강제로 의료-경찰 위원회에 끌려갔는데, 조사를 받으면서 ‘매춘부’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이러한 여성들에게는 특별 양식서가 발급됐고, 이 양식서 덕분에 그런 명칭도 갖게 됐다.

이 양식서 매춘부들이 자주 매춘 시스템의 취약층이 되곤 했다. 표면상으로는 업소에 소속되지 않은 양식서 매춘부들은 그들에게 방을 빌려준 집주인에게 종속되거나, 밤중에 도시의 거리로 나가 일하면서 매일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범죄자와 망상가들의 희생자가 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1908년~19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바로 양식서 매춘부들이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여럿 일어났다.

그러나 모든 양식서 매춘부들이 그러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지는 않았다. 소위 ‘귀족’이라 불린 계층도 있었는데, 좋은 아파트에서 고객을 받는 이들이었다. 20세기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신문에서는 아래와 같은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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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지사도 없고, 평판이 좋지만 돈이 없는 아가씨가 그녀에게 200 루블을 빌려주는 사람에게 가진 것 전부를 드리려 합니다.’

또는

‘젊고 쾌활한 아가씨가 괜찮은 보수를 대가로 노인의 시중을 들고자 합니다. 삶과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사랑합니다.’

일반적인 양식서 매춘부들은 사실상 도시 중심부에 나오는 것이 금지됐었다는 것을 얘기해 둘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에 ‘알렉산드롭스키 공원’이 불명예스러운 명성을 누린 바 있다. 통상 이 공원에서 일하는 매춘부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범죄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비밀 매춘부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증명서나 양식서 없이 일하는 매춘부의 수가 공식 등록된 매춘부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종종 완전히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이 양식서 매춘부들의 권유를 받아 그러한 비공식 매춘부가 되곤 했다. 비밀 매춘 시장은 완전히 범죄세력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

위와 같은 비밀 매춘부들은 의료검진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성병에 감염될 위험성이 아주 높았고, 성병은 눈깜짝할 새에 퍼져나갔다. 1910년에는 매독에 감염된 매춘부의 비율이 약 50%였던 반면, 1914년에는 이 비율이 76%까지 증가했다.

같은 시기 도시에는 전에 없이 아동 매춘이 성행했다. 그저 사탕 한 상자나 예쁜 드레스를 사기 위해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의 매춘은 성인들에 의해 관리됐다. 여성 ‘관리자들’이 자신의 손아래 친척을 매춘 소녀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으며, 아주 어린 매춘부, 가끔은 10~12세 매춘부를 선호하는 고객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업소들도 있었다.

1917년 2월경 도덕을 포함한 모든 것의 ‘자유’를 가져온 혁명은 여성들도 ‘해방시켰다.’ 의료-경찰 위원회가 폐지됐고, 이러한 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법 밖에 놓였다. 매춘부들은 더 이상 국가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 혁명러시아는 자유로운 신여성에 맞지 않는 이 활동을 법적 영역에서 삭제해 버림으로써 매춘을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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