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리셋’에서 ‘신냉전’으로...오바마 시절 러미관계 악화 이유는?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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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기 미국은 대러 관계의 ‘리셋’을 주창하고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양국간의 이해 충돌과 상호 불신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의 퇴임을 코앞에 둔 지금 양국관계는 일부 개별 분야의 협력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최악의 상태에 머물고 있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퇴임한다. 18일 자신의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항상 러시아와의 건설적인 관계를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말 양국 관계의 분위기는 미국이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고 러시아를 세계질서 훼손으로 비난하는 등 결코 훈훈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오바마 자신은 최근 몇 년 사이 우크라이나 사태 및 러시아의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살인자 정권’ 지지를 이유로 여러 차례 강경한 대러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의 러시아 혐오와 근거 없는 세계 지도국 행세를 비난하는 것으로 대응해왔다.

선의(善意)

오바마 재임기 전반에 걸쳐 러미 관계가 항상 나빴던 것은 아니다. 2008년 47세의 일리노이스주 상원의원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었던 당시 러시아에서는 신중한 낙관론이 대두됐다. 당선인 오바마는 남오세티야 사태로 발생한 러시아와 조지아의 8월 전쟁 이후로 위기에 봉착한 미러관계를 복원할 의사를 밝혔다.

2009년, 런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댜통령의 만남. 사진제공: AP2009년, 런던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댜통령의 만남. 사진제공: AP

당시 가장 큰 관심은 미국의 폴란드, 체코 미사일방어(MD) 체계 구축 계획과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체결에 대한 문제로 모아졌다. 특히 동유럽 MD 구축 문제는 러시아를 상당히 자극하는 사안이었다.

갈등의 씨앗은 ‘MD’

오바마와 메드베데프 두 대통령이 시작한 양국관계 리셋 프로세스는 초기에는 결실이 있었다. 2010년 4월 두 대통령은 2021년까지의 핵전력 운용에 대한 ‘룰’을 정한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3에 조인했다. 양국은 보유 핵탄두 수를 1550개, 미사일 수를 700개로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에 따르면 미국은 2012년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적극 지원했다.

이러한 리셋 과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 첫 번째 사건은 미국의 동유럽 MD 배치 계획이었다고 ‘민첸코 컨설팅’ 커뮤니케이션홀딩의 예브게니 민첸코 회장은 지적했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성공적으로 START-3를 체결한 미국이 동유럽 MD 배치 계획을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관계 냉각의 시발점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유럽 MD가 러시아가 아닌 이란을 타겟으로 한다는 미국의 해명을 러시아는 믿지 않았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비확산문제프로그램 책임자도 이러한 견해를 같이 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동유럽 MD 구축을 러시아와의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았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정반대로 바로 이것이 대화 중단의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은 미국의 국익에 입각한 실리주의적인 것으로 개인적 성향은 이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다피에서 모스크바 반정부 시위까지

뒤를 이어 ‘아랍의 봄’, 미국과 서방의 리비아 작전(2011년) 등 두 강대국의 관계를 악화시킨 일련의 사건들이 연속해 발생했다. 아르바토프는 “카다피가 살해 되자 러시아에서는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회상했다. 러시아 당국은 리비아 내전과 분열이 미국의 무책임하고 위험한 정책의 결과라고 보았다.

관계 악화의 다음 획을 그은 사건은 2011년 러시아 총선과 뒤 이은 대규모 시위였다. 민첸코 회장은 “2011~2012년 시위 당시 러시아 정부는 미국이 러시아 내정 문제에 상당히 노골적으로 개입했다고 느꼈다”고 지적했다. 2012년 대선에서 푸틴이 재선되자 관계는 더욱 냉각됐다. 아르바토프는 러시아가 1991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식 발전방식’을 거부한 것이 푸틴의 두 번째 임기부터였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 전체의 시각과는 독립된 유라시아 국가로서 정체성을 수립하려 했다.

전반적 관계악화에도 사안별 협력은 이뤄져

양국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것은 러시아가 크림을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이 시작된 2014년이라고 민첸코 회장은 말했다.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나선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며 대러 경제제재를 도입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관계 리셋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크림 사태 훨씬 전인 리비아 사태 때였다”고 말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제공: AP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제공: AP

시리아 사태에서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고 미국은 반정부 야권을 지지하고 있는 것도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분쟁 조정을 위한 또 한 차례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직후인 2016년 가을 공격적 수사는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10월) 정치평론가인 표도르 루키야노프는 “어디로 튈 지 모를 냉전의 정신이 러미관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썼다.

달리 생각해 보면, 양국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에도 개별 사안에서의 협력은 이뤄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아르바토프는 “오바마 시절 푸틴이 재집권하자 양국은 이란 핵문제,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에서 공조를 취했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은 사안별로 건건이 이뤄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양국은 이미 역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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