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체 25년... 탈소(脫蘇) 공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소련 해체 25주년을 맞아 ‘붉은 제국’이 과거보다 1/6로 좁아진 가운데 그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결산해 보자. 탈소 공간은 격렬한 지정학적 대립 무대가 되었을까? 소련을 부활시키려고 할까? 또 초강대국 붕괴의 관성은 얼마나 강할까?
소련의 지도 출처 : 유리 벨린스키/ 타스

구소련 공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는 소련 붕괴 직후 이 지역에서 출범했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조직인 독립국가연합(CIS)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한편으로, CIS는 아랍국가연맹이나 아프리카연합과 비슷하다. 유럽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ion) 같은 집행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CIS는 어떤 공동 결정을 논의하는 단순한 포럼 그 이상이다. 관측통들에 따르면, CIS는 가입국들의 통합 정도가 크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지역 연합체와 다르다.

분석가들은 CIS가 옛소련 소속 국가 대다수를 통합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회원국들이 CIS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말해 주며 옛 연합체의 다양한 부분을 최소한이나마 통합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구소련 지역 국가 주민들 사이에서 통합 구상이 인기 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개발은행의 통합 바로미터 자료에서도 입증되고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안드레이 수즈달체프 고등경제대학 교수에 따르면, CIS는 가입국들을 단일 지역으로 유지해 주고 있다.

통합 준비 못한 러시아

하지만 CIS 창설 당시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CIS 틀 안에서는 EU를 모델로 하는 심화된 통합 프로젝트들이 제시됐다. 이미 1994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CIS를 기반으로 유라시아연합을 창설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당시에 현실화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엘리트들이 대표하는 러시아조차도 통합 프로젝트를 준비하지 못했다.

러시아를 포함한 CIS 회원국들은 독립 국가 건설에 집중했지만, 이는 절대 수월치 않았다. 1990년대 구소련 공간을 휩쓴 잇단 군사 분쟁(타지키스탄의 경우에는 수 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내전)만 떠올려 봐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뒤에 “CIS 틀 안에서 우리 공통의 경험이 연마됐다. 이 덕분에 다양한 포맷과 속도로 이뤄지는 지역 통합의 더 효과적인 형태들로 옮겨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라시아 통합

이러한 경험의 교훈은 탈소 공간의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현실화되었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지도부가 집권하면서 흔히 유라시아 프로젝트로 불리는 자체 통합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핵심에는 과거에도 통합 의지를 숨기지 않은 CIS 국가들인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연합국가는 이미 1999년 루카셴코와 옐친 대통령에 의해 창설됐다). 2001년에는 유라시아경제공동체 창설 협정이 체결됐다. ‘통합 핵심’ 국가들 외에도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몇 년 후에는 우즈베키스탄도 이 연합체에 참여했지만, 나중에 탈퇴했다.

통합 프로젝트는 발전을 거듭한 끝에 2015년 1월 유라시아경제연합(EAEU)로 변모했다. 현재 EAEU 회원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5개국이지만, 타지키스탄 대신 아르메니아가 참여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타지키스탄도 합류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국가행정아카데미의 뱌체슬라프 미하일로프 교수에 따르면, 현재 EAEU는 완전히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할 수 있다.

유라시아 통합 프로젝트가 출범하자 푸틴 대통령은 ‘소련을 부활시키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의 유명한 발언이 빌미가 됐는데, 그는 소련 붕괴를 가리켜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주로 러시아 사회에 지배적인 분위기를 표현했을 따름이었다(러시아인 63%는 소련 해체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푸틴 대통령 자신도 소련 부활이 그의 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여러 차례 부인했다. 그는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진 것을 복원하거나 복제하려는 시도는 순진한 생각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와 정치, 경제를 토대로 한 긴밀한 통합은 시대의 명령이다”고 2011년 가을 한 신문 기고문에서 밝혔다.

‘러시아를 대체하려는 세력의 중심’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 프로젝트만이 탈소 공간의 유일한 통합 이니셔티브는 아니다. 약 20년 전 조지아(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로 구성된 구암(GUAM,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위한 기구) 진영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우즈베키스탄이 합류하면서 이 기구의 약칭도 구우암(GUUM)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은 늘 그렇듯이 여기서도 곧 탈퇴했다. 우즈베키스탄은 CIS의 또 다른 회원국인 투르크메니스탄처럼 탈소 공간의 동맹체들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암은 1990년대 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와 미국 워싱턴에서 있었던 4개국 정상회담을 통해 탄생했다. 구암의 발전 동력은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 이후에 나왔다. 구암은 러시아의 에너지 프로젝트들을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했다. 카스피해 지역 에너지 자원을 러시아를 우회해 유럽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서서히 교착상태에 빠졌다. 국가 수반 차원의 정상회담은 2008년이 마지막이었다. .

CIS국가 연구소 자리힌 부소장에 따르면, 정치동력만으로 구암이 힘을 얻을 수는 없었다. 회원국 간 경제 교류도 아주 미미했다. 수즈달체프 교수에 따르면 구암은 러시아에 다소 상처 받은 국가들로 이뤄져 있다.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구암 진영 국가들은 모두 EU와의 협력협정에도 서명했다. 이들은 모두 자국 내 분리주의 세력과 갈등을 빚고 있다. 수즈달체프는 “구암은 러시아를 대체하는 세력 중심을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확신했다.

수즈달체프에 따르면 현재 구소련 지역에서 대안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이는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낳은 결과다. 이와 함께 수즈달체프는 탈소 공간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의 갈등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전망한다.

CIS

CIS 정회원국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러시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해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와의 5일 전쟁 이후 CIS에서 탈퇴했다. 우크라이나는 CIS 헌장을 비준하지 않았으며, 최근 들어 CIS 완전 탈퇴 관련 법안이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통과됐다. CIS 국가들은 상호 방문용 비자 면제(투르크메니스탄 제외)와 자유무역지대 , 다양한 종류의 사회보장 및 교통 관련 협정으로 통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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