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왜 침묵하게 되었나

코메르산트
러시아의 유일한 대규모 민족주의 단체가 임시 활동금지에 놓이게 됐다. 검찰은 이 단체를 극단주의 단체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Russia포커스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에게 러시아의 민족주의 운동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또한 이러한 운동이 왜 스스로를 정부의 ‘새로운 적’이라 부르고 있는 지를 물었다.

올해 8월 모스크바 검찰은 민족주의 운동 ‘루스키예(Русские - 러시아인들)’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고, 이 운동을 극단주의 단체로 인정하고 러시아에서 금지시킬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검찰은 이를 위한 근거로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순수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해방투쟁의 시작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들의 정강을 들었다. 아직은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루스키예’의 지도자 드미트리 됴무시킨은 당국이 모종의 ‘조작된 사건’에 자신을 연루시켜 곧 체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본지에 털어놓았다. 또 다른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인 알렉산드르 벨로프는 현재 구치소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현재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일종의 ‘소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한편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민족주의 운동의 ‘점진적 침체’라고 평가하면서,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내부 분열에서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1년 반 전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 대다수는 돈바스(우크라이나 동부)를 지지했으나, 나머지는 우크라이나 정부 편에 섰다. 심지어 2014년에 개최된 연례 민족주의 행진 ‘러시아 행진(Русский марш)’에서도 그들은 두 파로 갈라졌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하나만이 장기화된 운동의 위기의 원인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침체 혹은 위협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이 현재 깊은 침체에 있다고 여기는 것은 외부의 관찰자들만이 아니다. 심지어 운동의 핵심 지도부에서도 이를 인정한다. 됴무시킨은 “(민족주의 운동에게는) 정치적 미래도 없고 거의 모든 기반이 와해됐으며, 그 패잔병들을 무력기관들이 족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당국이 민족주의 운동을 손보기 시작한 것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라고 보았다. 행여 국민적 저항운동과 급진 민족주의 운동이 결합할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들 자체로는 현재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세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돈바스에서 러시아로 돌아오는 이들은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정보분석센터 ‘소바(Сова)’의 소장이자 민족주의 및 외국인혐오 문제 전문가인 알렉산드르 베르홉스키의 의견이다. 그는 "이들은 손에 무기를 쥐어본 자들로 우크라이나 분쟁이 사그라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이들의 수가 수 천 명에 달한다"며 “이들이 러시아로 돌아오면서 급진단체에 가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국이 스탈린주의자들을 포함한 각종 급진주의 단체들을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제 빼앗기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운동 내 분열이 정치세력으로서 민족주의 운동을 완전히 와해시키지는 못했다. “지난 1년 동안 실제로 변한 것이 있다면 민족주의 운동이 더이상 건설적인 의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정책연구센터의 연구원 세르게이 프로스타코프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이전 10~15년 동안 “당국이 이들의 슬로건을 대단히 교묘하게 도용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까지는 운동 내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의제가 창출됐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러다가 2014년에 이르러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의 주류 노선을 결정적으로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신의 주장이 전에 없이 정부가 추진하는 노선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림 병합, 즉 소련의 부활이라는 이상, 그리고 돈바스의 러시아인 보호가 그것이다.” 프로스타코프는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민족주의 운동의 정치적 세 불리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이 당국 정책 선동의 엑스트라로 이용됐다는 것이다. 베르홉스키도 이에 동의한다. 소위 친체제적 민족주의자들, 즉 친정부 정당인 ‘조국(Родина)’당, ‘안티마이단’ 운동, ‘위대한 조국(Великое Отечество)당’마저도 정치적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했다. “그들은 당연히 어떤 압력도 받고 있지 않지만,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이들이 거둔 서글픈 결과를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베르홉스키는 말한다.

새로운 적

그런가 하면 드미트리 됴무시킨은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 내에 다른 종류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이제 야권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그것이다. “2010년까지는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은 정부와 엇박자로 간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러나 그 운동 내 여러 단체들이 금지되기 시작했다(됴무시킨의 ‘슬라브연맹(Славянский союз)’과 ‘슬라브의 힘(Славянская сила)’은 극단주의 단체로 인정됨). 초기에는 산발적으로 운동 지도부를 기소하다가, 이제는 그 횟수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이제 민족주의자들은 (크렘린에)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그들이 스스로 적을 만든 것”이라고 됴무시킨은 밝혔다.

상처 입은 러시아 민족주의 운동이 장차 어떠한 형태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지에 대해 예리한 분석가들조차 섣불리 예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러시아 민족주의는 힘든 시련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모든 위기에는 끝이 있다. 운동이 완전히 사멸할 리는 없다. 이는 불가능하다”고 베르홉스키는 말한다. 그는 민족주의 운동의 과격화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프로스타코프는 오는 11월에 있을 ‘러시아 행진’ 집회에서 민족주의 운동의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한창 때는 약 1만 명이 모였지만, 지난 해는 사상 최소 인원(경찰 추산 1500명)이 집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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