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소비에트 시대 25년... 신생 러시아 앞에 놓인 중대한 도전들

(사진제공=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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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올해로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 국가 건설의 시발점이 된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РСФСР, RSFSR) 주권 선포 25주년을 맞이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25년을 결산하며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가 온전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여기에 많은 단서를 달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25년 간의 러시아 국가 건설을 평가하면서 전반적으로 러시아가 온전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는 중대한 도전들이 놓여 있고 그런 도전들에 대한 해법 찾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에 관해 말할 때 분석가들은 신생 러시아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여러 측면에서 시간의 시험대는 이미 통과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모든 분석가들이 그 모순적 성격을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러시아연방의 주권선언이 구소련 시절 공표된 데 따른 모호성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러시아연방은 실제로 1991년 12월 역사속으로 사라진 소연방을 그때까지 지탱했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마지막 못질"

"선언 자체가 매우 모순적인 현상이었다. 이 선언은 한편으로는 소련 해체를 사전에 기정사실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연방 영토를 보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드미트리 안드레예프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교수가 Russia포커스에 이같이 밝혔다. 그는 러시아 주권 선언이 "소련의 관 뚜껑에 마지막 못질을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시나리오는 이미 나올 수 없었다. 이는 "최악의 방안들 가운데서 나온 최선의 선택"이었다. 소연방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게 해줄 기회들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보리스 시멜레프 경제연구소 정치연구센터 소장의 견해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은 소련 해체를 주도함으로써 자신의 일부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소련도 러시아 역사의 큰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국가 정체성

시멜레프 소장은 지난 25년간 러시아가 국가관리와 시민사회 제도를 수립하고 경제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는데도 여전히 러시아 국가는 필요한 안정성을 이 기간에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러시아가 효과적인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건설하지 못한 것과 주로 관련돼 있다. "러시아의 정치 체제는 심하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권위주의적인 체제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형성되지 않았고 의회도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는 단순한 거수기가 됐다. 튼튼한 정당 시스템도 갖춰지지 못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시멜레프 소장이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문제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Russia포커스에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소비에트연방사회주의공화국(РСФСР, RSFSR) 국가주권 선언문은 1990년 6월 12일 RSFSR 제1차 인민대표 대회에서 채택됐다. 선언문에는 "새로운 소연방 내에서 합법적 민주 국가 수립을 결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선언문은 RSFSR 영토에서 공화국 헌법과 법률의 우위를 확립하고 소련에서 자유롭게 탈퇴할 권리를 확인했다.

러시아 정치 시스템의 효율성을 두고 불평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하일 레미조프 국가전략연구소 소장은 러시아에는 아직 튼튼한 공화정치 시스템이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만약 공화정치 시스템이 형성됐다면 "대안 체제들의 경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공개적인 권력 교체"를 목도했을 것이다. "공개 경쟁을 통한 체제 교체가 러시아에서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대통령 왕조와 같은 계승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미조프 소장이 Russia포커스에 이같이 밝혔다.

이와 동시에 레미조프 소장은 이러한 시스템이 권력 강화와 위기 극복의 관점에서 볼 때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강력한 대통령제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국가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라고 말했다.

옐친의 권력욕

현대 러시아에서 강력한 대통령제 전통은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에 의해 확립됐다. 최근 옐친 대통령의 통치기가 러시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실험의 시대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당시 옐친 대통령은 권위주의 정치로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은 옐친 대통령이 제출해 채택된 1993년 헌법을 향한 것이었다. 이 헌법에 따르면 러시아 정치에서 대통령제는 다른 모든 권력 구조에 대해 무조건 우위를 점한다.

안드레예프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현대 러시아 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옐친은 자신의 이익, 다시 말해 자신의 권력만 걱정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러한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러시아에 이득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강력한 절대권력에 향한 옐친 대통령의 욕망은 놀랍게도 러시아연방 국토를 재편성하는 데 따른 국가적 이해관계와 객관적으로 일치했다. 옐친이 아니었다면 그 끔찍했던 1990년대에 그 거대한 영토를 누가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안드레예프 교수가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93년 대통령 권력과 최고회의 권력 기구가 충돌하면서 옐친에 충성하는 군대가 의사당에 포격을 가했을 당시 옐친 대통령의 반대파였던 루슬란 하즈불라토프 최고회의 의장과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대통령을 지지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이라면 옐친 편을 들었을 것 같다.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러시아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안드레예프 교수가 1990년대에 여러 지역에서 폭넓은 정치 자치권을 선포한 것을 가리키는 '주권 행진(парад суверенитетов)'으로 유명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일어난 자치권 선포에서 가장 극적인 한 대목은 체첸의 독립선언과 이후 벌어진 1차 체첸전쟁이었다.

다민족국가 앞에 놓인 도전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강력한 대통령제가 러시아 현실에서 담당하는 긍정적인 역할에 관해 말하면서도 동시에 의회 등 나머지 국가 기관들이 허약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현대 러시아 국가가 안고 있는 약점들을 논의할 때 일부 전문가들은 민족 영토에 따른 연방 구성 원칙, 다시 말해 러시아연방 내 민족 공화국들의 존재를 지적하기도 한다.

레미조프 소장은 이런 점에서 볼 때 러시아연방에서는 단일한 정치 유기체로서의 민족 건설 대신에 다민족 국가 건설이 진행되는 소비에트식 민족 건설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안에 많은 민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러시아가 자결권과 그에 따른 의무를 가진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신생국다운 활력이 없다"

러시아의 국가 구성 외에도 소비에트 과거와 관련된 모순적 특징은 또 있다. 현대 러시아의 이데올로기는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로 지나치게 가득 차 있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미하일 비노그라도프 '페테르부르크 정치' 재단 회장은 러시아연방이 자신의 현재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소련의 후계자라는 사실로 강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고대 러시아 국가의 창건자인 류리크까지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서 러시아연방은 신생국이 가질 수 있는 역사력 원동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이 신생국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은 최고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노그라도프 회장이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의 성공을 가리키면서 Russia포커스에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나머지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과 비교할 때 러시아의 국가적 정체성은 대체로 양호해 보인다. 시멜레프 소장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망이 밝지 않은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키스스탄 같은 다른 역내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는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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