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츠 교수, “2차대전 소련 승리 스탈린 리더십 없었으면 불가능”

(사진제공=제프리 로버츠)

(사진제공=제프리 로버츠)

역사학자 제프리 로버츠(Geoffrey Roberts) 교수가 Russia포커스의 알렉세이 티모페이체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소련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굉장히 유능한 전시 지도자로 간주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 역사적 인물에 담긴 커다란 역설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요 몇 년 사이 '대조국전쟁 승리는 스탈린이 아닌 국민에 의한 승리였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 말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의 전쟁 승리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나?

"전쟁은 스탈린의 리더십, 적군(赤軍)과 그 장군들이 담당한 역할, 소련 국민의 막대한 희생이 결합해 승리했다는 게 질문에 대한 짧은 답변이다. 소련의 서방 연합국들이 특히 전쟁 막바지에 상당히 기여한 바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련이 공동의 승리에 이바지한 바가 훨씬 더 컸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책 '스탈린의 전쟁들(Stalin's Wars)'에서 나는 스탈린의 리더십이 소련의 승리에 필수불가결했다고 주장했다. 전시 스탈린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가 전시에 소련 국민의 결집을 이끌어낸 굉장히 유능한 최고 사령관이었음이 드러난다. 그의 지도력이 훌륭하지 않았다면, 나치 독일의 침략에 맞선 항전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의 공동 승리에서 스탈린이 담당한 중심 역할은 당시 그의 적과 친구 모두에게 폭넓게 인정받았지만, 이런 관점은 냉전 시기와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에 의해 사라졌다. 스탈린 격하 운동은 스탈린의 리더십을 최대 강점으로 내세웠던 스탈린 우상화를 공격하여 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스탈린이 위대한 군사령관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가 잔인한 독재자이자 값비싼 실수를 무수히 저질렀다거나 지나치게 강경한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의 커다란 역설은 그가 역사의 방향을 좋게 바꿔놓기도 한 동시에 나쁘게 바꿔놓기도 했다는 데 있다."

-군사작전 계획자로서 스탈린의 기량을 어떻게 평가하나? 그런 기량이 전쟁을 통해 향상됐나?

"전시에 스탈린과 긴밀하게 일한 장군들은 모두 스탈린을 최고 사령관으로 높게 평가했다.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스탈린은 전선 작전과 전선 연합작전을 조직하는 기술을 터득하여 작전을 잘 이끌었다. 그는 전략 상황의 핵심 고리를 짚어내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스탈린의 미덕은 군사 전문가들이 제시한 조언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2차대전 당시 총참모장은 이렇게 굳게 확신했다. '스탈린은 ... 전략 사령부에서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최고 사령관으로서 스탈린은 요구가 많고 까다로웠지만, 공정했다. 그의 지시와 명령은 전선 사령관들에게 자신들의 실수와 단점을 깨닫게 해주었고 모든 방식의 군사작전을 다루는 법을 능란하게 가르쳐 주었다.'

전쟁 초기 스탈린과 휘하 장군들은 모두 가파른 학습곡선을 걸었다. 이들은 각자 역할에 돌입했다. 장군들은 차츰 훌륭한 조언자가 돼갔고 스탈린은 그러한 조언들을 능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쟁 승리 후 스탈린이 대원수로서 자신의 중대한 역할에 다소 몰입한 나머지 전후에 자신의 군사적 천재성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몰두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탈린의 오만함에 희생된 사람은 그의 최고 부사령관이었던 주코프 원수였다. 그는 소련의 승리에 기여한 자신의 개인적 공로를 너무 많이 주장한 나머지 지방으로 좌천됐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에서 방금 승리한 사람으로서는 그러한 행동은 별로 놀라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스탈린과 그의 휘하 장군들의 관계는 어땠다고 말할 수 있나?

"전시에 스탈린은 리더십 스타일을 바꿨다. 제압하고 지시하는 스타일 대신 토론하고 그 토론을 감독하는 스타일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유능한 장군들을 두고 이들을 굉장히 뛰어난 최고 사령관으로 단련시켰다. 이들 중 일부 장군은 스탈린에 크게 압도되어 늘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못했지만, 주코프 같은 다른 장군들은 그렇지 않았다. 스탈린은 장군들에게 진실과 정직을 권장했지만, 일단 결단을 내리면 복종과 순응을 요구했다. 두려움이 부하들과의 관계에서 스탈린이 사용한 최후의 무기였지만, 스탈린이 가진 매력과 개성의 힘은 그가 이 무기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이다."

-스탈린과 일부 다른 군사령관이 나치와 싸우면서 인명 피해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소련군에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런 말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영어식으로 군대가 '총알받이(cannon-fodder)'였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말이 스탈린과 그의 휘하 장관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목표를 추구했고 패배 대신에 승리를 얻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주코프는 자신과 스탈린이 전시에 잔인했느냐는 질문에 잔인하지 않으면 안 됐기 때문에 잔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스탈린도 군대를 무분별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런 태도는 그들이 전쟁 기간 거의 내내 병사가 부족했던 점을 고려하면 불합리했을 것이다. 군대를 포위망에서 끌어내려고 노력했고 전쟁이 확산되자 힘을 아끼기 위해 전투에서 철수하거나 전투를 아예 중단하려고까지 했던 사례들이 많이 있다. 스탈린과 주코프는 강인한 사람들이었어도 무정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스탈린은 전쟁 중에 아들을 잃었고 주코프의 고향 마을은 독일군이 점령해 불태워버렸다. 사상자가 많이 나왔지만, 이는 그들이 몰인정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독-소 전쟁의 본질과 상황 탓이었다.

되돌아보면 사상자를 줄일 수도 있었던 여러 가지 방법을 지적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8만 명의 소련 병사가 전사하면서까지 베를린을 함락할 필요가 있었을까? 베를린을 포위하여 항복하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에는 베를린을 신속하게 함락하면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전쟁이 여름까지 계속됐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계산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프리 로버츠(Geoffrey Roberts)는 아일랜드 코르크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Cork) 역사학과 교수다. 저서로는 '스탈린의 전쟁들: 세계대전에서 냉전까지, 1939-1953(Stalin's Wars: From World War to Cold War, 1939-1953)'(2006), '몰로토프: 스탈린의 냉혹한 전사(Volotov: Stalin's Cold Warrior)'(2012), '스탈린의 장군: 게오르기 주코프의 생애(Stalin's General: The Life of Georgy Zhukov)'(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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