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정부 신흥재벌 베레좁스키 사망

영국 망명 중의 보리스 베레좁스키. (사진제공=로이터)

영국 망명 중의 보리스 베레좁스키. (사진제공=로이터)

국외 망명 중인 러시아 신흥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그의 사위인 예고르 슈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알렸다.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그가 자살을 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베레좁스키는 자신의 경호원들에 의해 런던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영국 경찰은 그가 목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부검 소견을 발표했다.

검시관들은 그의 시신에서 격렬한 저항을 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짧게는 수일내, 길게는 일주일 정도 추가 부검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독성물질 및 조직검사가 추가로 진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의 사위인 슈페의 말에 따르면 베레좁스키는 최근 우울증에 시달려왔으며 친지들과의 연락을 끊은 채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거의 집안에만 머물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로펌 '더 알렉산더 도브로빈스키 앤 파트너스' 대표이자 저명한 변호사인 알렉산드르 도브로빈스키는 베레좁스키가 자살했다고 밝혔다. 도브로빈스키가 자신의 SNS에 적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런던에서 방금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복잡한 인간이었다.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어서? 연이은 타격 때문에? 이제 영영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축재과정

베레좁스키는 1946년생으로 2000년부터 영국에 거주했다. 1990년대 온 나라가 국유재산 민영화의 혼란 속에서 허우적댈 때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러시아 최대 TV방송사 '오에르테'(ORT, 채널 1번)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형의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장악하며 이익을 챙겼다.

1997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추산한 베레좁스키의 총 재산은 미화로 30억 달러에 달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임기말년에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직을 맡는 등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1990년대 말 푸틴 집권에 일정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대통령 취임 후 푸틴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기 시작하자 야권으로 돌아서 스스로 망명의 길을 택했다. 러시아에서 지명수배 상태였던 그는 오랜 기간 반(反)푸틴 운동에 전념해왔다.

2012년에는 푸틴 집권 초기 사이가 틀어졌던 동료 올리가르히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런던 법정소송에서 패배했다. 베레좁스키는 아브라모비치가 석유회사 '시브네프티'의 주식을 헐값에 팔도록 협박했다고 주장했지만 영국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언론재벌

67년 인생길에서 여러 차례의 변신을 시도해온 베레좁스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역할은 정치모사가, 러시아 반정부 야당의 재정적 후원자였다.

베레좁스키는 1990년대 벤츠를 수입하고 러시아 자동차제작사 '아프토바즈'의 중개상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재산을 증식했다. '아프토바즈'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일 때 그는 수백만 달러의 이윤을 남겼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당시 국유재산 민영화로 거대한 부를 축재한 이들을 일컫는 올리가르히의 선두 대열에 올랐다. 석유회사 '시브네프티' 소유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그는 러시아 최대 TV방송사인 ORT의 최대주주가 됐다.

1996년 대선에서는 ORT 방송사를 보리스 옐친의 재선을 위한 선거운동본부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암살 시도를 모면했으며 차량 폭탄으로 자신의 운전기사가 사망하기도 했다. 그를 '크렘린의 대부'로 묘사하면서 저명한 TV기자의 암살사건에 그가 연루됐다고 보도한 포브스를 고소한 일도 있다. 포보스는 오보를 인정함으로써 소송을 일단락지었다.

옐친 대통령 임기말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 옐친대통령의 딸 타티아나의 절친, 옐친 측근으로 구성된 이너서클, 이른바 '패밀리'의 일원으로서 일생 최대의 권세를 누렸다. 푸틴을 '패밀리'에 소개하고 국회에서 푸틴의 지지기반이 될 정당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장본인이 바로 베레좁스키였지만 푸틴은 대통령 취임 후 ORT를 재국유화하고 올리가르히들의 정치적 야망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들을 단행했다.

노골적인 반정부운동

베레좁스키는 2000년 말 러시아를 떠나 영국으로 자진 망명했다. 망명 초기 자유러시아당을 지원하여 반푸틴 정치세력을 규합하려던 그의 시도는 자유러시아당 소속 정치인 2명이 암살되는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의 노골적인 반정부운동이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2006년 전직 KG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선거전문 기자 안나 폴리트콥스카야 암살 사건에 대해 크렘린은 베레좁스키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은 채 그것이 푸틴 대통령을 음해하기 위한 해외체류 반정부 인사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베레좁스키는 이를 반박하면서 리트비넨코의 살해 배후에는 푸틴이 있다고 성토했다. 망명 중에 리트비넨코에게 머스웰 힐의 저택을 구입해주었으며 러시아의 제2차 체첸전 개시의 방아쇠가 된 1999년 아파트 폭탄테러의 배후로 푸틴을 지목하는 내용의 책을 리트비넨코가 출판하도록 도왔다.

그는 푸틴이 자신의 정적은 누구든 암살할 수 있는 인물이며 자신도 그 타겟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전직 DJ 크리스 에반스에게서 천만 파운드에 구입한 맨션은 방탄 창문, 레이저모니터, 스파이카메라와 강화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마지막 집무실은 전직 프랑스 외인부대원들이 경호하는 런던 메이페어의 사무실과 런던 교외 써리의 대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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