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IS' 러·서방 연대, 푸틴이 열쇠 쥐고 있다

AP
파리 테러에도 유럽 복수심 약해

파리 테러는 러시아와 서방의 이슬람국가(IS) 격퇴 연합 작전에서 장애물 제거에 도움될까?

파리 테러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세계 지도자들을 경악케 했다. 이슬람국가(IS) 격퇴에서 러시아와 서방이 연합하려면 첫걸음을 내디딜 필요가 있지만, 이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가 될 수도 있다.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급진세력 격퇴를 둘러싼 문명 세계의 연합은 일반인에게는 사실상 도덕적 당위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결속력에 도달하는 방법은 진지하게 생각을 시작하자마자 넘을 수 없는 장벽에 가로 막힌다.

◆장애 1: 우크라이나와 크림, 제재=새로운 ‘반IS’ 연대로 가는 도정에는 어떤 장애물들이 놓여 있을까? 장애물은 많다. 러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첫 번째이자 가장 분명한 장애물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서방이 러시아에 가하고 있는 경제 제재다. 러시아에는 제재가 도입된 순간부터 ‘제재를 철회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성이 승리한다’는 정서가 러시아의 이념적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상당한 힘을 얻고 있다. 크렘린궁에서 유럽이 정말로 결정적인 행동에 가까이 와 있다고 느낀다면, 예를 들면 맞 제재 철회를 통해, 아니면 연대를 보여주는 모종의 방법을 통해 유럽을 필요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시도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IS에 대한 공포감과 복수심이 유럽 정치 엘리트들의 자존심을 압도하려면 파리 테러보다 좀 더 강력한 계기가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의 대러 기본 입장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퍼붓는 비난은 IS 격퇴에서 유리한 카드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과거에 얽매이거나, 명성이 깎이는 것을 감내하지 않으려 하거나 입장을 바꿀 수 없는 한 현재의 정치인들은 확실히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는 곧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력을 발휘할 경우에만 러시아와 EU 관계에서 모종의 결정적 방향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푸틴 대통령의 최대 이점은 그가 행동에서 엄격하게 요구되는 원칙과 도덕적 태도에 유럽 정치인들보다 훨씬 덜 얽매여 있다는 점이다. 재임 기간에 푸틴 대통령은 무엇이 도덕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지, 선악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러시아의 국익이 무엇인지를 그 자신이 직접 규정하는 정치 현실을 구축했다.

따라서 지금은 오직 푸틴 대통령만이 자신의 자산 중에서 뭔가를 희생하며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체스 조합은 졸을 희생하면서부터 시작하는데, 푸틴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예상치 못한 ‘첫 수’를 두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시 한계는 있다. 심지어 테러가 칼리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러시아 전체를 위협한다고 해도 러시아는 반IS 연합을 위해 크림을 우크라이나에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상군 투입해야 IS 섬멸 가능 ... 미국 중심 나토 회원국들 전면전 꺼려

A321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수 천 명 추모인파가 드볼르쪼바야 광장에 모인 가운데 아이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제공=아나톨리 메드베디/로시스카야 가제타)A321 테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수 천 명 추모인파가 드볼르쪼바야 광장에 모인 가운데 아이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촛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제공=아나톨리 메드베디/로시스카야 가제타)

◆장애물 2: IS와의 전쟁 개시를 꺼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반IS 연대에서 문제의 또 다른 양상은 나토 내부의 상황이다. 여기서도 모든 것이 러시아와 EU 관계 못지않게 복잡하다. IS 격퇴를 위한 연합군 지상전 조직에서 미국의 지도력과 의지에 커다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확실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다. 오바마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최근까지 미국의 대외정책 의제 가운데 하나로 11월 말 파리에서 열릴 예정인 기후변화 회의도 성공을 보장 못한다. 과거의 모든 국제 위기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취했던 신중한 관망 자세를 떠올려 본다면, 이번에 그가 어떻게든 다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안보 대책을 강화하고 시리아에서 아사드 반군에 무기를 새로 공급하고 유럽에 IS를 독자적으로 격퇴하도록 권장하는 것 외에 현 미국 행정부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없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는 객관적으로 이해할 만한 미국의 이해관계에 충분히 부합할 수도 있다. 9·11 테러 때와 달리 이번에 미국은 사태의 중심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토 회원국들이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3가지 이유=나토 내 유럽 동맹국들이 예를 들면 2011년 리비아 군사작전 때처럼 미국의 직접 참여 없이 반IS 군사작전을 조직할 수 있을까? 유럽은 그렇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며, 그것도 러시아군과 협력 속에 해야만 한다는 관점이 러시아에는 꽤 넓게 퍼져 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살펴보면 그런 시나리오는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첫째, 리비아 작전은 대테러 성격을 띠지 않았다. 군사개입을 통해 IS 를 섬멸하려면, 혹은 할 수 있다면 완전히 다른 자원이 필요하며 지상전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파리 테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테러의 피해를 직접 겪지 않은 나토 내 유럽 회원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심지어 모든 프랑스인도 전면전을 꺼린다.

둘째, IS 격퇴를 위해 지상전을 조직하려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현 시리아 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공통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나토 내 유럽 파트너들은 특히 미국의 직접 참여 없이는 중동의 일부를 사실상 재식민화하고 시리아나 이라크 북부에 나토 관할의 보호국을 수립하게 되는 군사작전에 절대 합의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시리아에 주둔한 러시아군은 현재 반IS 연합을 위한 어떤 기회를 조성해 주기보다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거의 해결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러시아의 기본 구상은 모든 것을 미국의 개입이 있기 전, ‘색깔혁명’ 이전 상태로 되돌리고,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 통제를 회복시키고, 이라크 정부를 지원해 이들이 자체 힘으로 암적 존재인 IS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흘러나온 치약을 튜브에 도로 집어넣으려는 것과 비슷하다.

모종의 새로운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그러려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한다. 강대국들은 중동 내 옛 자산에 대해서는 잊고, IS와 더 넓게는 이슬람 테러리즘을 공동의 유일한 실제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다.

◆화해를 위한 첫걸음 떼기=IS의 테러는 문명 국가 정상들이 지혜를 모으고 단결하도록 촉구하는 경종이 되고 있다. 폭발과 총격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오는 공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방이 앓고 있는 골병의 징후다.
자신의 전 역사에 걸쳐 서방의 일부로서, 이 거대한 문명 공간의 동쪽 변방으로서 발전해 왔던 러시아는 현재 서구 문명의 대립자인 동시에 이슬람 급진세력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서구의 마지막 희망이자 구원자로서 이상하고 난처한 위치에 놓여 있다.

러시아는 어느 한쪽의 위상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느 쪽의 위상도 러시아에 희망과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국제 상황은 어떤 대안도 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답이 없는 문제는 러시아와 미국, 유럽 정상들이 현재 특정 국가와 민족, 정치 엘리트들의 특수한 이익이 아니라 이들 모두가 아직 속해 있는 서구 문명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만한 지혜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누군가가 앞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이렇게 첫걸음 내딛는 사람은 가장 현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는 통치자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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