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은 누구인가

알렉셰이 요르스
현재 러-미 관계는 냉전 종결 이후 가장 첨예한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 7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레이건 국방포럼 연설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은 평소와 다름없이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혹독하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반격에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러시아가 시리아 위기에 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면서 "판을 깨고(spoiler)"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문제에서도 “핵무기를 쩔렁거리며”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따라서 유럽은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해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의 강경한 발언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시나이 반도 상공에서 224명의 생명을 앗아간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테러일 가능성이 있다) 조사를 도울 용의가 있다는 정보가 언론에 새어 나온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협력은 우크라이나 위기 시작과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러-미 정보기관 최초의 협력이 될 수도 있다.

시리아 문제에 있어서는 미 국방장관의 발언은 국무부의 노선과 확연하게 대비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최근 몇 주 동안 시리아 분쟁 해결을 의제로 삼아 적지 않은 회담을 진행했다. 만약 존 케리 국무장관이 빈 회담에서 러시아에 시리아 관련 위와 같은 비난을 쏟아냈다면, 다자 회담 자체에 종지부를 찍는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국 입장에 심각한 이견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리아 분쟁 해결 과정에서는 상황이 악화되기보다는 타협에 대한 희미한 희망의 빛이 엿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미 국방부와 국무부 간에 이러한 ‘수사적 이견’은 흔한 일이다.  이것은 ‘굿 캅 배드 캅(당근과 채찍)’ 놀이인 동시에 각 부처의 독자적인 이해관계 추구도 볼 수 있다. 국방부는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유럽 내 나토 군사기지 건설에 ‘새롭게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명분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유럽 국가들은 나토의 프로그램과 계획에 명시돼 있는 것보다 적은 분담금을 국방비에 할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 밖에도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유럽 주둔 미군 수는 30만 명 이상에서 5만 명 남짓까지 줄었다(이는 아태지역 주둔 미군 수보다도 적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미 국방부는 그동안 강경론을 위한 공식 명분으로 기능해온 우크라이나 위기가 잦아들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놓친 것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위기는 나토의 개입 없이, 오직 복잡한 협상을 통해 완화됐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협상에서 러시아의 서방 측 파트너들은 군사적 압박이 아니라 경제적 압박에 의지했다.

게다가 최근 많은 유럽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는 우크라이나 위기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의 참여 없이는 시리아 위기도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을 점점 더 자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막차를 놓치기 전에’ 당연히 유럽 내의 새로운 군사기지 건설 계획들을 확정짓기 위해 서두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들을 둘러싼 예비 결정은 오는 12월 열리는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채택하고 그런 다음 2016년 여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

미 국방부의 강성 발언은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된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이 시작되고 나서 더 잦아졌다. 러시아의 적극적 중동 개입은 일부 미 언론과 특히 의회 내 공화당 다수파에 의해 오바마 행정부의 ‘실패’로 평가됐다. 이런 의미에서 미 국방부의 강경한 수사는 선동전에서 입은 피해를 ‘상쇄’하고 조만간 있을 대선에서 공화당에 우위를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 러-미 관계는 냉전 종결 이후 가장 첨예한 위기를 겪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신냉전을 말할 때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오바마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해결되지 못한 위기를 후임 대통령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서는 긴장이 더 고조되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면, 중동의 대규모 위기가 이웃 국가들로 얼마나 확산될 지 아직 충분히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든 적어도 러시아와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협력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대신 미 정부의 일부 관료들의 입에서는 '도발'이라고밖에는 달리 평가하기 어려운 성명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심각하게 번진 러-미 적대의 불길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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