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익에 반하는 INF 조약 파기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 조건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지상 기반 크루즈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의 유럽 배치를 계획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 INF) 조건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지상 기반 크루즈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의 유럽 배치를 계획하고 있다. 서방 통신사들의 이 같은 보도가 나온 후 거의 30년 된 INF에 대해 관심이 쇄도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 당국도 그에 대한 반응을 내보였다.

냉전 상황에서 획기적인 합의였던 INF는 냉전 이후 많은 점에서 그 의미를 상실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상황에서 볼 때조차도 현재 유럽이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 무대가 될 것으로는 상상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러 양측의 합의로 이뤄진 INF는 다른 나라들의 중단거리 미사일 시스템 개발을 제한하지도 못한다.

또 러시아와 미국은 중단거리 미사일 시스템 폐기 필요성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특히 러시아에서 강하다. 러시아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이웃 국가들인 중국과 이란, 북한도 그와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는 INF가 현대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를 놓고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심지어 러시아 군 당국은 조약 탈퇴 가능성을 직접 논의하기도 했다.

1987년 체결된 INF는 사정 반경이 최저 500km에서 최대 5,500km까지 달하는 모든 종류의 미사일 폐기를 규정하고 있다. 이 조약은 유럽을 미소(美蘇) 간 무력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주요 무대로 간주했던 시대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행 시간이 짧은 이 미사일들은 전투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군대 지휘 체계 파괴가 이 미사일들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무기를 폐기하기로 한 결정은 유럽 내 군사적 대립 강도를 줄여줬을 뿐 아니라 이후 역내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한 기반을 닦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INF를 둘러싼 정보전을 펼쳐온 쪽은 미국이었다. 2013년 말 미국 언론은 미국이 러시아의 합의 조건 위반을 의심하고 있다는 정보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미국의 주장에 담긴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주장이 두 가지 종류의 차세대 러시아 미사일 시스템, 다시 말해 RS-26 '루베시' 탄도 미사일과 R-500 크루즈 미사일과 관련돼 있다고 믿고 있다. 루베시 탄도 미사일은 조약에 공식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루베시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조약에 규정된 최고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루베시 미사일은 5,500km 이하 거리에서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됐다)으로 인해 루베시 미사일의 주요 목적이 중거리 목표물 타격이라고 추정할 수 있게 됐다. R-500 크루즈 미사일에 대해서도 최대 사거리를 놓고 벌써 의혹이 일고 있다. 최대 사거리가 INF의 최저 한계치 500km를 초과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 관리들은 INF 조건 위반에 대한 미국의 어떤 비난에 대해서도 항상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번에도 미국의 주장이 구체성을 담고 있지 않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미국이 자신의 비난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원격계측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측은 중단거리 미사일을 복원하려는 어떤 시도도 심지어 INF 조건을 공식적으로 준수하더라도 위험한 불장난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INF가 효력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조약 제15조는 어느 한 쪽의 '상위 이익'이 위협에 놓일 경우 조약 탈퇴를 허용한다. 중단거리 미사일을 복원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무엇이든지 간에 심지어 INF 규정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조약 탈퇴 등 미국의 대응 행동을 부를 것이다.

INF의 효력이 정지되면, 이는 무엇보다도 바로 러시아 안보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전개되면 미국은 자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재배치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냉전 당시처럼 자국 미사일을 서유럽 국가들에만 아니라 나토 신규 회원국들에도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행보는 미국의 미사일들이 러시아 전략 시설까지 도달하는 비행 시간을 몇 분 안으로 단축하여 무장 해제시키는 타격 잠재력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이런 도전에 정확하게 대응할 만한 재원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러한 잠재력을 맞받아칠 만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엄청난 힘과 자금을 소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재 러-미 관계 수준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도조차도 긴장의 악순환이 일어날 것으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항상 높은 신뢰도를 자랑해온 '군축' 채널을 통해 러시아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을 뿐일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현재 INF의 운명은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조약 조건에 따라 폐기된 미사일과 동급의 미사일을 재배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그렇게 결정됐다면, 미국은 충분한 증거를 입수한 이후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군비 통제 분야의 대화를 통해 신뢰 관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미국이 러시아와의 정상적인 접촉을 복원하려는 의지를 뒷받침하는 증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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