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 개혁의 이율배반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지난 4월 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궁극적으로 러시아군은 완전한 직업 군인제로 전환될 것"이라는 자신의 희망을 밝혔다. 이로써 그는 러시아의 지리적 규모때문에 모병제로의 완전 이행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2013년 11월의 자신의 견해를 부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쇼이구 장관의 진심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장관의 발언만큼이나 모순적이다. 그는 두 번 모두 진심을 말했다.

러시아에서 군복무는 역사적으로 사회 엘리트층에게는 출세의 엘리베이터였고 농민에게는 의무였다. 농민들은 거의 평생 징집령이 떨어지면 강제로 군으로 끌려갔고, 그들의 가족들의 입에서 "누구누구가 군에 끌려갔다"는 말은 이미 자신의 아들이나 남편을 다시 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소련 시대 군대는 노농군이 돼 어느 정도 위신이 생겼고, 복무기간이 2~3년에 불과했으며 진정한 남자가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인생 학교로 받아들여졌다. 군대에서 일정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에, 병역은 많은 이에게 인생의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삶의 기회가 훨씬 많은 대도시 사람들은 소련이 붕괴하기 오래 전부터 이 '명예로운 의무'를 짐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의 새로운 국가권력은 군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처럼 직업군인제로 전환될 것이라 국민에게 약속하며 수세를 취했다. 이 계획은 군은 물론이고 경제학자들의 호응도 받지 못했다. 학자들의 경우 당시 경제 상황에서 모병제 전환 계획은 '실현불가능한 망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정치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모병제 대 징병제

위와 같은 약속의 필요성은 당시의 러시아 군이 빠져있던 혼란과도 상당 부분 관련돼 있었다. 1, 2차 체첸전쟁을 담은 영상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구소련 지역 수 많은 분쟁지역의 사지로 보내졌던 열여덟 살 병사들이 처한 상황이 어땠을지 쉽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쥐꼬리만한 월급마저 체납에 시달리던 장교들 중 최고 인재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이직했고, 병영에서는 폭행 및 가혹행위가 만연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현상은 군인집단에서는 흔한 것으로 예를 들어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가 그의 유명한 소설 '도시와 개들'(1963)에 훌륭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그 규모 면에서 끔찍한 정도에 도달했다. 선임병이 신병을 구타해 죽이는가하면, 고문을 하고 고통을 주는 일이 빈번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을 개인 다차(교외별장)를 짓는 데 노예처럼 동원하거나 심지어는 '빌려주기도' 했다.

모병제도는 2차 체첸전쟁에 처음 활발히 도입됐다. 2000년 대선을 앞둔 옐친의 후계자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또 다른 징집병 희생자들은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군대에 계약군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에게 보수와 전투수당을 지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정부는 바로 그러한 재정적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2001년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징병제와 모병제가 혼합된 형태의 군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2007년 경 상비부대들을 모병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러한 계획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다. 정부는 계약군인 1인당 보수로 겨우 8천 루블을 할당할 수 있었는데, 이는 러시아 낙후지역에서조차 너무나 작은 액수였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장교들에게는 할당량이 주어졌고 그들은 사병들에게 모병지원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 '포촘킨 마을'(눈속임용, 과시용 사업)은 계약 기간인 3년이 지나자 사라졌고, 그동안 발이 묶였던 군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조지아의 교훈

엄청난 조직적, 기술적 문제점들을 드러낸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이후 군개혁이 시작됐다. 이 개혁은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아나톨리 세르듀코프의 주도로 진행됐다. 모병제에 기초한 군개혁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이해한 당시 군지도부는 병력규모를 줄이는 대신, 장교와 계약군인의 보수를 늘리고, 징병복무를 적극 홍보하기로 결정했다. 징병복무 홍보사업에는 복무기간을 1년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포함됐다. 당시 장교들은 1년 안에 고등학교에서 갓 졸업한 아이들을 복잡한 군사장치를 능숙하게 다둘 수 있는 군대 전문가로 양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호소했지만, 선택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현재 비판의 대상인 세르듀코프 전 장관으로부터 군개혁의 바톤을 이어 받은 쇼이구 장관의 발언은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13년 쇼이구 장관은 병력 100만 명은 러시아와 같이 면적이 거대한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부족하지만, 더 큰 군대를 유지할 여유도 없기 때문에 징집제를 통해 대규모 전쟁에 대비한 예비군 병력을 양성하고, 국지전을 위한 모병제가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충분히 합당한 발표를 한 것이다. 그러나 양 전선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부재하고 끊임없이 소비 숭배를 선전하는 순전히 금전적 존재동기로 사회 전체가 이행하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의무'와 '조국 수호'를 떠들어봤자 그들은 무엇을 누구로부터 지키는지, 또한 어째서 운좋게도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동년배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이러한 의무 자체에서 면제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직업군인 희망자가 많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러시아 전체 평균임금이 3만 2천 루블이고 계약군인은 3만~4만 루블을 받는다. 겨우 국민 평균임금을 받으면서 병영에 갖혀 상명하달식 생활을 하면서 목슬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 결과 쇼이구 장관은 30만 모병군인 계약 서명식 자리에서 완전한 모병제가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매우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힐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그는 이로써 군대의 절반이 모병군으로 채워졌다고 지적했는데, 이 말은 러시아군 병력이 1백만 명으로 축소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채우려면 40만 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다시말해 결론은 아직 완전 모병제 도입은 불가능하지만, 러시아군의 지향점은 다음아닌 모병제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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