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합병 1년… 러-서방 알력 뒤로 한 채 중국 유라시아 최대 강국 부상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러시아 크림 합병 1년… 국제 상황 어떻게 변했나?

1년 전 크림과 세바스토폴이 러시아연방에 귀속되자 이를 두고 러시아 정치만 아니라 전 세계 상황도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러시아는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정학적 '적출' 시도에 대한 강경한 반응을 통해 만약 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를 '금지선'이 무엇인지를 서방에 확실히 보여줬다. 그러자 누구도 먼저 멈추려고 하지 않는 게임이 시작됐다. 강대국들의 위신과 권위가 걸린 게임 말이다.

지난 한 해는 몹시 다사다난하여 지적해야 할 사건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적 동기가 경제적 합리주의 보다 우세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014년 봄부터 러시아와 서방이 채택한 결정들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분명한 점은 그런 결정들이 치러야 할 경제적 대가가 가장 먼저 고려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와는 다른 기준들, 안보와 전략적 입장 고수 필요성, 국격, 어떤 행동에 대한 대응 불가피성 같은 것들이 양측의 행동을 좌우하는 논리가 됐다. 마르크주의 개념들을 빌려 말하자면,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한 것이다.

크림의 사례에서 러시아는 서방이 넘어서는 안 될 '금지선'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주권' 개념의 함의에 대한 문제도 새롭게 제기됐다. 세계화 시대에는 주권 민족국가가 세계 시스템의 구성 단위가 되지 못한다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의 환상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국가가 경제, 통신, 사상, 문화적 영향 등 수많은 외부 영향으로부터 자신의 영토를 객관적으로 지켜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주권 국가의 역할도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국가 제도들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내부의 문제들이 외부의 자극에 반향하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사례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글로벌 환경에서는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정치적 대립의 격화를 막아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예상을 뒷받침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게 한다. 정치적 갈등이 여전히 첨예하면, 경제적 연관관계는 상황을 완화하는 요인에서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구체적 손실의 차원에서만 아니라 상호 인식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크림 합병 이후 지난 한 해는 세계의 세력 판도를 바꿔놓았다. 물론 아직은 새로운 현상유지가 이미 확립됐다기보다는 변화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와 유럽연합(EU) 관계의 성격도 변했다. 이 관계는 십중팔구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불렸던 모델이 지난 20여 년간 작동했다. 이 모델은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러시아와 EU 사이에 공통의 미래 비전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러시아와 EU는 '위대한 유럽'을 공동으로 건설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규범적 통합에 관한 모종의 형식이 규정돼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초창기의 열정도 현실론과 그 이후에는 회의론에 자리를 내줬지만, 목표는 저버리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충돌은 여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심지어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종전의 관계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많은 점에서 2000년대 초의 관성으로 유지됐던 상호 신뢰가 이제는 무너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식적인 대러 제재들을 철회한다고 해서 이것이 양측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의 제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 경제적 행위주체들에게는 비공식적인 영향력 행사 수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와 EU는 우크라이나 위기 이후의 관계를 모색하는 새로운 개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유라시아의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한 점도 어쩌면 우크라이나 위기가 낳은 뜻밖의 중요한 결과일지 모른다.

범대서양 관계도 변하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을 둘러싸고 물밀듯 쏟아진 논의들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되살리고 미국의 비호를 받는 강력한 경제 블록(환태평양파트너십(TPP)과 범대서양무역투자파트너십(TTIP), 이 중에서 첫 번째는 가능성이 희박하고 두 번째는 가능성이 있다)을 조성하여 냉전시절과 같이 똘똘 뭉친 '서방 진영'을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분명하게 엿보인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기본 조건들이 과거에 작동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모색의 결과가 예상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통합이 점차 느슨해지는 시기가 끝나고 나면 서방을 새롭게 결속해줄 요인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가장 중대한 변화는 우크라이나 위기에 연루돼 있지 않은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서 일어났다. 우크라이나가 어느 쪽 통합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지를 두고 러시아와 EU/미국이 충돌하는 가운데 중국은 형태는 전혀 다르지만, 똑같은 지리적 공간을 겨냥한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실크로드 경제권' 창설 이니셔티브가 때마침 러시아와 EU가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립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2013년 가을)에 발표됐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중국은 보란듯이 어떤 경쟁과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나머지 프로젝트들을 모두 '우회하고' 가능할 경우 그것들을 아예 흡수해버리는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게다가 중국이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의 규모 면에서 중국에 필적할 만한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나머지 행위주체들(러시아와 EU, 미국)은 유라시아에서 무엇보다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정치적 도구를 휘두르고 있는 반면, 중국은 '현금'과 정치적 중립성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이 유라시아의 최대 강대국으로 부상한 점은 어쩌면 우크라이나 위기가 낳은 예기치 못한 가장 중요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EU, 미국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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