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012년 내놓은 ‘아시아 독트린’ 현실화 착수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지난 5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상하이 방문 중 체결된 러-중 가스공급 계약은 놀라운 규모를 자랑한다. 더욱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제재에 옥죄이고 있는 가운데서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도 매우 시의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외부 상황이 핵심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계약은 푸틴 대통령이 2년 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당시 발표한 아태지역으로의 복귀(возвращение в АТР)라는 러시아의 입장 대전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익

이번 거래 자체가 러시아에는 신이 내린 은총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반면 중국이 얻은 이익에 관한 얘기는 많지 않다. 중국은 러시아 가스에 대해 30년간 4천억 달러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초대형 프로젝트의 서막일 뿐이다. 바이칼 호수 인근 매장 가스를 연간 38bcm 규모로 공급한다는 얘기가 현재 진행 중이다. 이는 현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구매하고 있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밝혔듯이 이번 계약은 서시베리아 매장 가스를 소위 말하는 '서부 경로', 즉 '알타이'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공급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협상에 길을 터준다. 공급 규모와 시기도 거의 같다.

이로써 중국은 첫째, 앞으로 수십 년간 가스 내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셰일가스 매장지 개발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자체 자원이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카타르와 인도네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은 더 비싼 데다가 위험하기도 하다. 중국의 주요 맞수인 미국의 통제 아래 있는 항로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에서 국내정치 문제로 점차 비화하고 있는 화력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스모그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도 가스는 중국에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중국은 일본과 한국을 따돌리고 아태지역에서 가장 많은 가스를 비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곧 유럽 가스공급시스템에 버금갈 서북 아시아 가스공급시스템 구축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미간의 교착상태는 글로벌 차원의 영향권 쟁탈전에서 지엽적 사건처럼 보인다. 반면 미국의 역내 압박에 직면한 중국의 전략적 안정성은 러시아 에너지 자원의 초대형 수입 계약 체결 이후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최대 건설 현장

푸틴 대통령이 2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APEC 정상회의에서 말한 내용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태지역 재계 대표자들 앞에서 연설하며 "우리는 러시아의 에너지 안보만 아니라 우리와 협력하고 있는 역내 모든 나라의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것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의 목표들은 더 광범위하다.

푸틴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 기고문에서 "우리는 미래 러시아의 성공과 시베리아·극동 지역 발전을 보장하는 데서 아태 공간으로의 전면 진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면 진출은 지난 5월 21일 상하이에서 이뤄졌다.

중국과의 가스 공급 계약 체결 직후 푸틴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밝혔다. "전혀 과장 없이 말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4년간 세계에서 가장 큰 건설 사업이 될 것이다. 유효매장량 총 규모는 3,000bcm로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 러시아 국내외 시장에 약 50년간 공급해줄 수 있는 양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대규모 작업을 통해 시베리아 인프라 전체를 현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그야말로 세계, 그중에서 아시아의 가스 분야 에너지 산업에서 일대 사건이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기타 프로젝트

러시아의 다른 에너지 기업들도 '가스프롬'과 중국의 이번 계약에 무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티'는 동시베리아에 자사의 주요 가스관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이고리 세친 사장이 기자들에게 밝혔다. "우리는 동시베리아에서 일련의 새로운 매장지를 개발하고 있다. 하나의 고리를 형성하는 수준-타굴, 로도치노예, 타스-유랴흐스코예 매장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가스를 수송하고 현금화하는 기회를 얻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생산 규모도 연간 16bcm, 더 나아가 최대 20bcm까지 꽤 큰 편이다." 세친 사장의 말이다.

중요한 점은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사고 이후 원자력 에너지 복원이 심각한 국내정치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일본에서 에너지 기업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대러 제재에 마지못해 동참했지만, 자국의 에너지 안보 문제들에 대한 접근방식에서는 대이란 제재 사례가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항상 독자적 입장이었다.

시베리아의 가스 자원 매장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특별한 경쟁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고 알렉산드르 파세치니크 국가에너지안보재단 전문위원이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매우 광범위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들이 이들 국가들로부터의 기술협력과 자본투자라는 관점에서 매력적이라는 데 있다. "이와 동시에 서시베리아산 가스를 동방으로 전환하게 되면 이곳으로부터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 국가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 국가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세치니크 위원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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