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논리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최근 세계에서 일어난 사태 훨씬 전부터 계획돼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월 중국 방문은 처음부터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하여 국제 정세가 변화하고 러시아와 미국이 사실상 대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번 방문은 러·중 관계사에서 거의 전환점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이번 회담을 겨냥해 준비된 수많은 협정과 계약들이 양국이 얼마나 이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양국 정상이 시작을 알린 러-중 해군 합동훈련은 나머지 세계에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전략분야에서 동반자관계를 맺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막대한 잠재력을 보유한 두 이웃 국가 러시아와 중국은 관계 강화와 발전을 위한 당연한 열망 외에도 이제 밀착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더 생겼다.

우크라이나 위기는 미국이 자신이 보유한 대러 압박수단의 목록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나 흑해를 제맘대로 드나들기 시작한 미 항공모함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에 필요한 경제적 '열쇠들'을 주무르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작금의 세계경제가 미국 시스템의 산물이며 그것을 통제하는 것도 미국이라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도 러시아 정도의 열강을 고립시킬 능력은 없다. 그러나 시장과 금융, 기술 자원에 대한 러시아의 접근을 심각하게 방해할 수는 있다. 이때문에 러시아는 이를 위한 '우회로'가 필요할 뿐 아니라 미국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자체적 발전 동력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대안도 절실한 상황이다.

아시아로의 선회는 오래 전부터 거론되어 왔지만, 이 과정은 우크라이나發 지각변동으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중국과의 밀착 정책은 신중하게 내려진 결정이지만 동시에 아주 복잡한 과제다. 중국은 모든 협력국, 심지어 러시아 같은 거대한 국가조차 종속적 위치에 놓이지는 않을까 우려할 정도로 매우 강력한 국가다. 문제는 중국의 의중이 어떠냐가 아니라 양국의 경제적 잠재력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균형을 이루느냐에 있다. 아직까지는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더 능동적이며 눈에 띄는 행위주체다. 중국은 러시아의 뒤를 쫓고는 있지만, 자신의 경제적 부를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스크는 아직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밀착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러시아가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다음 세 가지 사항을 고수해야 한다.

첫째, 시베리아·극동개발이라는 국내적 측면과 아태지역에서의 입지확보라는 대외적 측면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대아시아 전략이다. 이 둘은 당연히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고 조율된 상태로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일본과 한국에서 인도,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다른 주요 행위주체들과의 관계를 동시에 확대·심화해야 한다. 이들 국가 중 일부는 미국과 의무관계로 묶여 있어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상황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관계 다각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중국과의 관계에 안주하지 않음으로써 운신에 필요한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

셋째,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풍부한 경험이 있다. 미국처럼 패권의 행사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을 끌어들여 세계적 차원의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는 전지구적 차원의 사상을 제시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중국은 문화적 특수성 때문에 이런 일에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 러시아도 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 와서 이런 자질들을 잃어버렸지만, 세계 질서에 대한 다른 비전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가 처한 위험성이 최근 1년간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에드워드 스노든 사태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최근 몇 주간 여러 국제기구들을 동원하여 보여준 분명한 대러 세력 과시가 그것이다. 만약 러시아가 최소한 슬로건 차원에서라도 지금과는 '다른' 세계화의 디자이너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경제적 열세를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러-중 밀착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아닌 러시아이며, 중국은 관대하게 이를 용인해주는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서는 안 된다. 중국은 불안 상황이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 국제 정세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자국 국경과 직접 맞닿아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우려한다. 중국에 한껏 예의를 갖추고는 있지만 미국의 대아시아 선회는 당연히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오랫동안 비교적 '잠복' 상태에 있었던 중국과 이웃 국가들의 수많은 영토 분쟁이 현재 첨예화되어 이미 국지적 차원을 확실히 벗어났다. 푸틴 대통령의 방중 기간에는 마침 베트남과의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어 중국 시민들이 베트남에서 소개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일본과 필리핀과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경제발전 모델을 둘러싸고 중국에서 진행 중인 열띤 논쟁도 여기에 덧붙일 수 있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전문가들조차 불경기를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높은 경제성장율은 중국의 정치체제와 중국 공산당 권력을 공고하게 유지해주는 담보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으로서도 막강한 정치·경제 주체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질적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러-중 양국관계에 항상 밝은 날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강대국 간에 의견대립과 상충되는 이해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발전의 논리에 따라 양국은 밀월관계로 접어들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단계는 어느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해도 좋을 만큼의 새로운 가능성을 양국에 펼쳐보여주고 있다.

표도르 루키야노프, 민간 외교자문단체 '외교국방정책회의(СВОП)'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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