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으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사태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일러스트=알렉셰이 요르스)

고도의 외교술만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2014년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래 세대의 교과서에서 분명 상세하게 기술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교과서로 후대의 외교관 지망생과 국제관계 학자들이 공부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냉전 종식 후 세계를 지배해온 '과도기'의 막을 내린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다.

우리 시대가 과도기를 이행 중이라는 것은 강대국들이 '이행'을 각기 다르게 파악하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미국과 친미 성향의 국가 등 서방의 시선에서 25년 전의 냉전 종식은 곧 새로운 세계 질서의 확립이었다. 이 질서는 예전처럼 평화조약이나 외교 회의로 도출된 게 아니라, 사실 우연히 등장했다. 평화조약을 체결하려 했던 '상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면서 남은 한쪽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빠졌고, 이 혼란은 곧 남은 쪽이 큰 격차로 상대를 제압한 게 분명하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긴 편에 어떻게 행동지침을 정할 권리가 있을 터였다. 그 후 지금까지 세계가 급진적으로 변했지만, 서방이 세계질서를 감독하는 게 공정하고 옳다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의혹을 제기하는 자는 공공의 선이라는 미명하에 배격해야 할 수정주의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서방 사회 밖에서는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경제력과 영향력이 급증하는 몇몇 신흥국은 세계 질서라 부를 만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 질서가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다. 어쨌든, 예전처럼 20세기 중반의 세계 질서를 반영하는 국제기구(유엔 안보리, IMF, 세계은행 등)의 기능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불과 25년만에 변화의 열기와 붕괴, 안정화, 성장의 피로를 모두 겪은 러시아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어떤 질서도 형성되지 않았다고 굳게 확신하는 쪽이다. 러시아는 지난 25년 내내 세계가 러시아의 의견을 고려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의적인 해석대로 움직이는 강대국이 세계 질서를 어느 정도나마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커져갔다. 실제 정치가 보여주던 것도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런 상황은 역시 세계에는 어떠한 질서체제도 없고, 다른 체제, 그것도 이제 막 형성해야 할 체제로의 이행이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는 또 다른 근거였다. 따라서 현상유지 자체가 없는데 미국이나 유럽이 러시아를 비난할 때 수정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어떤 이들은 러시아가 힘의 논리로 경계선을 둘러치면서 자신만의 다른, 뒤처진 세계에 살고 있다고 비난한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 정부가 '19세기 정신'을 되찾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헤르만 반 롬푸이 EU 상임의장은 러시아가 이념과 공포에 기반한 "이제는 영원히 과거가 되어버린 '냉전' 시절의 세계를 부활시키려 한다"며 몰아세웠다.

러시아가 대외정책에서 보수적이며 현대적인 외교 수단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러시아가 볼 때, 힘과 이해의 균형, 거래와 교환에 기반한 전통 외교를 대체할 것은 없으며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왜곡하는 식으로는 국가 간 관계의 안정적인 기초를 마련할 수 없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언급한 '19세기 정신'을 온전히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강대국이 마음대로 약소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그 시절 정치에는 국제관계의 기초적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 강자들의 이해관계가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는 인식이었다. 둘째는 단순히 일상적인 지정학적 힘겨루기가 아니라 일국의 안보 개념의 핵심을 침해하는 마지노선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었다. 이런 것들과 연관된 리스크는 로봇이나 컴퓨터가 아닌 인간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동안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고도의 전문적인 외교능력만이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다층적인 패키지 딜과 타협, 바터 정치(이해의 맞교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현안이 있을까?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 마련,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가스 가격, 엄청난 채무, 중단 없는 가스 수송, 향후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되는 제(諸) 선거들을 러시아가 인정하는 문제들이 있다. 이 안건들이 패키지 딜에 들어가는 기본 요소다. 자신에게 덜 중요한 것을 양보하고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이 안건들을 헤쳤다가 다시 짜맞추어야 한다.

현실 외교에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승리는 있을 수 없다. 누군가 그런 승리를 했다고 착각한다면, 이제 곧 모든 게 무너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배한 쪽이 보복에 힘쓸 것이기 때문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롬페이 EU 상임의장이 비난의 어조로 말한 유럽의 19세기와 냉전 시절의 특징은 바로 장기적이며 공고한 거래를 체결하는 능력에 있었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자신의 이익만 고려한 채 세계를 개편하려 했던 20세기 전반기, 그리고 서방이 자신의 정당성에 도취되어 그 누구와도 타협하려 하지 않은 21세기 초에 그런 것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계질서로 간주되던 것이 결국에는 과도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외교적 이성의 힘만으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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