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룰렛’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러시아는 서방과 중개인 없이 직접 담판을 지을 준비가 되어 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세 악화 이후 처음으로 언론과 만났다. 그는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절대 확신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선택한 노선도 계속 추진할 각오임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현 정세에 관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미묘한 어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주식이 대량 매각되며 요동친 금융시장과 서방 국가들, 특히 러시아를 겨냥해 공공연한 위협성 발언을 내놓기 시작한 미국 내의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혀 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사태 전개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일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 (우크라이나) 상황을 위헌적 쿠데타라고 규정한 반면, 그들은 그것이 무력을 동원한 정권 찬탈이 아니라 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만약에 이것이 혁명이라면,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는 중이라고 보는 일부 우리 전문가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인테르팍스 통신이 푸틴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 신생국과 그에 대한 어떤 의무 약정 문건도 합의, 서명한 적이 없다." 푸틴 대통령은 덧붙였다. 이어 그는 1917년 10월 혁명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이 와해되고 새로운 국가가 생겨났을 때의 상황에 이를 빗댔다.

이러한 발언은 1994년 조인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재평가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 양해각서에 따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소련 핵무기 철수 및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일성을 인정하기로 미국, 영국과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영국, 미국 3국 중 누구도 이 문서를 비준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푸틴 대통령은 크림의 독립뿐만 아니라 (오는 3월 30일 찬반 국민투표에서 크림 주민들은 십중팔구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기타 지역들의 유사한 국민투표 결과도 인정할 준비가 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크림의 러시아 병합 문제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다. "아니다, 고려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나는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만이 자유의지와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고 또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이런 일이 가령 코소보인,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에게 허용됐다면, 더 나아가 세계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이런 일이 허용됐다고 한다면, 내가 아는 한 상응하는 UN 문건들이 규정하고 있는 민족 자결권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 것이다."

이처럼 상세한 답변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다시 말해 러시아와 인접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분리 문제를 국제적으로 논의할 준비가 돼 있음을 증명해준다. 푸틴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어 사용 인구의 보호를 위해 무력 사용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와 싸울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 문제는 사실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대통령이 가능한 모든 옵션을 손에 쥐고 협상에 임하는 미국식의 러시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서방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토적 통일성 문제는 러-미 정상의 전화 대화에서 이미 논의됐다고 한다. 하지만 크렘린 공보실 보도자료는 그에 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관련하여 서방 정상들과 협의한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기밀 사항이다. 일부 대화는 심지어 핫라인으로도 이뤄진다. 따라서 우리가 협력국들과 무엇을 어떻게 논의했는지 발표할 권리가 내게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핫라인은 외교기관들 사이에서도 가동되며 국가 정상들이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신속히 직접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예를 들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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