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은 왜 호도르콥스키를 석방했나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의 석방을 둘러싼 이야기는 수수께끼와 거의 미스터리에 가까운 우연의 일치로 가득 차 있어 톰 클랜시(2013년 10월 작고한 미국 작가. 첩보 스릴러로 특히 유명함)가 살아 있지 않은 것이 유감이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교묘한 스파이 음모만 아니라 온갖 '로맨스'도 분명히 묘사됐을 특급 스릴러 한 편이 나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다.

호도르콥스키의 석방은 안타깝게도 열광적인 낙천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 인권운동의 승리'가 되지 못했다. 많은 인권운동가는 물론이고 굵직한 재계 인사들까지 나서서 호도르콥스키의 석방을 여러 차례 요구해 왔지만, 이번 '선물'은 그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석방은 바로 서방과의 거래였다.

이 '거래'에는 몇 가지 조항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분명한 것은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시도와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편, 많은 이에게 1974년 2월 솔제니친의 국외추방(당시는 베를린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가 무대였다)을 떠올리게 한 호도르콥스키의 석방은 그 모양새가 스파이 교환 작전을 방불케 했다. 푸틴 대통령의 전 직장인 정보부 종사자들을 기념하는 국경일 '정보부의 날'에 그가 석방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정말 그런 '교환 작전'이었던 것으로 밝혀질 지도 모른다. 모두를 어리둥절케 한 호도르콥스키의 석방 이야기에 담긴 '독일 단서'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는지 모른다.

2013년 여름 독일 슈투트가르트 고등법원이 20년간 러시아에 기밀정보를 제공한 독일인 두 명(독일인이 아닐지도 모른다)에게 간첩행위로 유죄 선고를 내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은 안드레아스 안슐락과 하이드런 안슐락이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들의 활약은 특급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러시아는 나토(NATO)의 아프가니스탄 작전, 동유럽 미사일방어(MD)망 배치, 독·미 관계 등에 관한 기밀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1년 10월 미 연방수사국(FBI)이 독일에 넘겨준 정보 때문에 적발됐다. 그 전에 FBI는 러시아를 배신하고 미국으로 탈출한 러시아 대외정보국(СВР) 대령 알렉산드르 포테예프로부터 미국내 러시아 스파이망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안슐락 부부의 변호를 맡았던 호스트-디터 포츠케는 스파이 교환 협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교환은 언제든 성사될 수 있다"고 시인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여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고 한다. 하지만 양국 대변인들은 이를 부인했다. 얀슐락 부부가 조만간 어디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지켜보도록 하자. 물론 우리가 알게 된다면 말이다.

또 다른 '교환'은 12월 20일에 나온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에서 엿볼 수 있다. 이 결정은 일주일 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늦춰졌다. '마그니츠키 명단'에 관한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미 의회 정보에 따르면, 일주일 전 이 명단에는 러시아 무력기관 고위관리를 포함한 약 20명의 이름이 추가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 의회 의원들로서는) 놀랍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호도르콥스키가 그 원인일 수는 없었다. 아니면 적어도 유일한 원인일 수는 없었다. 현재 러·미 간에는 시리아와 이란 문제 등 일련의 사안에 걸쳐 민감한 대화 기류가 흐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상호비방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우연의 일치는 또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지난 10월 말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이 무엇을 논의했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키신저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뻔질나게 방문하는 기행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과는 다른 차원의 인물이다. 그는 미국 지도부의 가장 민감한 주문을 수행한다. 그는 또한 일종의 '세계 정부'의 일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국제 컨설팅 회사 '키신저 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특히 JP 모건, 골드만 삭스 그룹 등과 연계된)의 회장이다. 이 회사는 대규모 석유·가스사업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국제금융계의 '프리메이슨 롯지'라고도 불린다.

이 회사의 비공식 '아그레망(승인)' 없이는 국제 규모의 많은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11월 12일 누군가 호도르콥스키에게 사면 탄원서를 쓰도록 설득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러시아 국영 석유사 '로스네프티'는 엑손모빌(ExxonMobil)과 미국의 최신 기술을 이용한 석유채굴 분야에서 또 다른 중요한 협정 패키지에 서명한다. 또다시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이 모든 우연의 일치는 최소한 한 가지를 말해준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는 양자가 걷잡을 수 없는 적대적 히스테리로 빠져들지 않게 제어하는 신뢰할 만한 수준의 고위급 협력 채널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호도르콥스키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몇 가지 의무조항에 묶여 있는 것 같다. 그의 베를린 기자회견을 보면 이런 인상은 더욱 강해진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호도르콥스키는 의무조항들을 이행할 것이다. 푸틴도 호도르콥스키를 석방할 때 이 점을 확실히 했다.

그렇다면 이제 호도르콥스키는 정치활동, 특히 '나발니 스타일'의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렇다. 하지만 호도르콥스키 스스로도 이미 작금의 러시아 정치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유코스(ЮКОС)의 "자산을 물려받은" '로스네프티'에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유코스 압류 계좌도 되찾지 않는다는 등 모종의 의무조항들이 있는 것일까?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호도르콥스키는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사면 탄원서에서 이 점을 적시했을 것이다.)

결국 호도르콥스키는 이제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위험인물이 아니다.

10년간 수감 이후 석방은 충격파나 다름없다. 호도르콥스키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는 부를 누린 기간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수감돼 있었다. 그의 인생극 제3막은 자기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위한 평범한 사생활로 꾸며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인생극 속편으로서 가장 이해할 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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