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을 겁주려면 레닌을 때려라?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이미 오래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스탈린 정권이 자행한 1933년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 Holodomor: 1932~33년 우크라이나에서 500~1,0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기근)’도 극단적 반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마치 어제 얼어난 일처럼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야권 급진주의자들이 레닌 동상을 끌어내려 해머로 박살낸 후 이 '혁명의 지도자'의 상징적 조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준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반응이 레닌에 대한 호감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년간 러시아 언론은 물론이고, 초중고 및 대학 역사 교과서에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대한 언급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을 띠었다. 러시아인 대다수는 레닌이 1917-1921년 혁명기에 러시아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을 중단시켰다고 보는 탈공산주의 시대 러시아에서 확립된 공식 견해에 점차 동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레닌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의 차원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급진적 야권이 동상에 분풀이한 그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물론이고 중도파 우크라이나인들조차 '자유(Свобода)'당 소속 민족주의자들의 소행이 분명해 보이는 이번 레닌 동상 철거 과정의 과격성에 불쾌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끌어내려진 동상을 파괴하면서 보여준 증오심에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의 핵심적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은 폴란드 민족주의자들과 아주 비슷하다. 아주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마저도 바로 어제 당한 개인적 모욕처럼 받아들여 그것을 오늘 복수의 근거로 인식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스탈린 정권이 자행한 1933년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 Holodomor: 1932~33년 우크라이나에서 500~1,0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대기근)'도 극단적 반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 게다가 대기근은 우크라이나에서만 아니라 러시아, 카자흐스탄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됐다. 농업 집산화와 연관된 사건들도 이들이 상황에 맞든 안 맞든 끄집어내는 단골메뉴로 물론 그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은 현대의 러시아가 져야 한다는 논리다. 러시아가 마치 고의적으로 우크라니아인 대량학살을 기획한 장본인이라는 듯이 말이다(!). 가령 리보프(Львов) 시 시장 같은 우크라이나 야권 정치인들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생각을 고쳐먹고' 유럽연합(EU)과의 협력 협정을 체결하지 않는다면 마치 '홀로도모르' 같은 사태가 재현될 것처럼 자국민을 겁주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현 사태는 유럽연합과의 협력 협정 체결을 연기(파기가 아니다!)하기로 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권적 결정에서 모두 기인한 것이다.

증오에 눈이 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끌어내린' 레닌이 홀로도모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레닌은 홀로도모르가 있기 거의 십 년 전에 사망했지 않은가. 게다가 레닌은 현재 키예프 시위에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출신지역인 서(西)우크라이나를 지배한 적도 없다. 수백 년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서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무너지고 소련과 폴란드 사이에 짧은 전쟁이 있은 후인 1921년 경에는 화친협정(Entente Cordiale) 국가들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동유럽에 구축한 폴란드, 루마니아 등 반소련 '완충지대'의 일부가 된 상태였다.

민족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들 신흥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서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인종적·종교적 차별을 받았다. 폴란드는 악명 높은 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기구(OUN, 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의 이념적 계승자인 현 우크라이나 급진 야권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이것은 2차 대전 이전 우크라이나인 탄압에 앞장 섰던 폴란드 독재자 유제프 피우수드스키를 숭배하는 동시에 그의 탄압의 대상이었던 우크라이나인들에 호감을 표시하는 것처럼 괴상망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OUN 및 기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단체들이 1939-1942년 사이 독일 나치군에 적극 협력해 폴란드군과 소련군에 맞서 싸웠을 뿐 아니라, 1944년에는 볼히니아에 폴란드인 대량학살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현재의 상황은 폴란드에게 있어 다분히 이중적 성격을 띠게 된다.

하기는 자신이 겪는 모든 불행의 근원은 언제나 러시아라고 생각해온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이 언제 이런 '팩트'들에 신경이나 쓴 적이 있었던가?

이번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사태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반러시아 정서는 절반의 진실, 그리고 진실의 은폐에서 기인한 것이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소련 시절 차별정책의 희생양이었다면, 브레즈네프 통치 시기 어떻게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채워지고, 소련군과 경찰, 그리고 심지어는 이제 저주의 대상이 된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그들이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2차대전 후 소련 구성공화국인 우크라이나가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정식 UN 회원국이 될 수 있었겠는가? 또 소련 시절 내내 우크라이나는 탄탄한 영토 확장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1920년대에 노보로시야(Новороссия,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러시아인 거주지 다수와 옛 돈스코이 군대의 카자크 땅(Приазовье, 아조프 해 연안지역)을 받았고, 1940년에는 루마니아에서 빼앗은 부코비나와 부자크 다민족 지역을 받았다. 이어 1945년에는 주로 루신족(Русины, 서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과 헝가리인이 거주하던 트란스카르파티아(Закарпатье, Transcarpathia) 지역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양받았고, 1954년에는 러시아의 크림 지역을 양도받았다. 우크라이나 민족의 통일(천 년 만에 처음으로!)도 1939년 정말 이해타산적인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독·소불가침조약)의 체결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조약으로 스탈린 정권은 "위대한 우크라이나 민족을 하나의 국가로 통일시킨다"는 미명 아래 리보프 주 등 현대 서우크라이나를 구성하는 일부 주를 폴란드에게서 단번에 빼앗았다.

분명한 것은 공산주의와 관련된 모든 것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공산주의 하면 바로 연상되는 러시아를 향해 이들이 쏟아내는 잔인한 증오심이 위선적이자 파괴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민족적 애국심과는 전혀 무관한 특정 올리가르히와 정치집단들이 사람들을 매번 유로마이단 광장으로 나오도록 선동할 때 사용하는 아주 편리한 '혁명'의 도구가 되고 있다.

This website uses cookies. Click here to find out more.

Accept cook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