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위한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일러스트=콘스탄틴 말레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중단으로 우크라이나에 권력투쟁 점화되다.

우크라이나의 'EU 편입'을 둘러싼 논쟁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첨예한 여야 대치로 비화되고 있다. 마이단 광장에 모여 EU 편입을 외치는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킬 필요까지 있었는지 모르겠다. 2015년 대선을 겨낭한 포지션 게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EU와의 협상을 중단하지 않았더라면 우크라이나는 EU 편입의 대가로 사회·경제적 붕괴에 직면했을 것이다. 'EU-동부파트너십' 정상회의 결렬 이후 러시아와 가진 껄끄러운 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멋진 선물'을 받지는 못했지만, 적당히 버티다가 나중에 가서 통합 유럽과 다시 줄다리기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었다.

야권은 이로써 시위 내내 '우리의 미래 유럽을 도둑맞았다'는 근사한 구호를 내걸 수 있게 됐다.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가 이 시점에 감옥 안에 갖혀있다는 사실 또한 반정부 시위를 지휘하는 이들에겐 매우 좋은 조건이다.

이제 온건한 시나리오에 대한 희망은 사리지고 있다. 야누코비치 정부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약한 모습을 보이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급진세력이 시위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어 이들과의 타협 또한 불가능하다. 무엇에 대한 타협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제 시위대의 구호는 EU 편입이 아니라 정권교체로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내분은 지정학적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EU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EU-동부 파트너십' 정상회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야누코비치 대통령에 유감과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EU가 야누코비치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누구든 정치·도덕적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 세력이 민족주의 정당 '자유'와 그 당수 올레크 탸크니보크처럼 현 대통령 보다 더 유럽과의 통합에 소극적인 경우일지라도 말이다.

무자비한 시위대 진압은 첫째, 사회 안정이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로, 그런 방법으로 야누코비치 정부가 공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 뿐이며, 그것은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도 다시 우크라이나 내정문제에 연루되는 탐착치 않은 상황에 빠진다. 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늪 속에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발을 들여놓은 바 있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좋은 시나리오'는 없다는 우울한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자신이 국익이 뭔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라에 최종적 입장을 정리하라고 강요해보았자 매번 리스크는 더 커지고, 얻을 수 있는 보장은 더 작아지는 결과를 낳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일종의 '멘탈 테스트(испытание на прочност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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