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교훈

(일러스트=나탈리아 미하일렌코)

(일러스트=나탈리아 미하일렌코)

지난 9월 8일 실시된 지방선거는 러시아 정치의 특징들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행정 개입이 줄어든 선거가 어떤 것인지 지켜보았고, 수도 모스크바와 지방의 표값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체감했다. 또 사회 전반에 만연하는 정치적 무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여권의 지지자 결집 능력 부재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분명해진 것은 지금까지 권력의 중심부로 접근이 차단됐던 이들도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일제 지방선거는 다섯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 문제 각각은 사회적 논의와 해결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모스크바 시장 선거는 입후보 순간부터 투표 집계까지 선거 운동이 대규모 행정 개입 없이 진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이는 놀라운 뉴스였다. 행정 권력이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권과 야권에서 모두 당혹감을 느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권한대행과 그의 선대위는 예상을 밑도는 선거 결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승리는 했지만 자신의 완벽한 정통성을 확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결과였다.

그러나 야권인 자유민주진영의 러시아공화당-국민자유당(РПР-Парнас, Республиканская партия России - Партия народной свободы) 후보로 출마한 알렉세이 나발니와 그 지지자들 또한 야권으로서는 익숙치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조직적인 선거법 위반이 있었다고 떠들 수는 있어도 이를 증명해 보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선거에서와 비교할 때 금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 과정의 선거법 위반 사례들은 새발의 피처럼 보였다. 행정적 개입이 사라지자 정치적 동맹자를 찾고 정적과 실속있는 투쟁을 하는 명실상부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얼떨떨하기는 여야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문제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수도 모스크바와 나머지 러시아 간의 심각한 단절 현상이다. 모스크바 선거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지방으로 대거 유입됐다. 상대후보 사퇴 강요, 현직 지방 수장들이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경쟁자들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지방의회 필터(муниципальный фильтр, 지방의회 전체의원의 5-10% 이상의 서명을 받은 자만이 지방정부 수장 선거 출마가 가능하도록 한 법)'의 적극적 활용, 최근 자료를 동원한 상대후보에 대한 압력 행사, 아니면 '회전목마 투표'(신분증을 위조하여 같은 사람이 여러 선거구를 이동하여 중복투표하게 하는 것)나 공무원 강제투표, 투표참관인을 투표소에서 퇴장시키는 방법 등, 온갖 부정과 편법이 이번 일제 지방선거가 실치된 사실상 모든 연방주체에서 자행됐다.

수도 모스크바와 다른 연방 주체들 간의 불평등, 즉 모스크바 시민과 지방 주민이 행사하는 '한 표'의 가격 격차에서 우리는 러시아 국민의 법적 지위 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더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보다는 오히려 그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지방 사람들은 모스크바가 가장 부유한 도시이고 모스크바 시민들이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시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모스크바 시민은 다른 연방 주체 주민보다 더 비싼 가격에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 차별적인 법적 위상, 국민으로서의 차별적 위상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세 번째 문제점은 거의 전국에 걸쳐 나타난 낮은 투표율이다. 이것이 모스크바에서는 알렉세이 나발니와 야당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지역들에서는 권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투표 결과와는 상관없이 국민이 투표장에 나가려 하지 않는 것은 정치체제에 대한 그들의 냉담한 태도를 반영한다. 이처럼 국민이 정치와 정치인들을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인식하자 정권도 야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권을 지지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일반 대중의 호감을 사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낮은 투표율을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 탓으로 돌리는 것이 대세지만, 사실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말과 생각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외현상이 영원할 수는 없다. 조만간 완전히 새롭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현 정치체제는 와해되고 말 것이다. 마치 1990년대 중반 벨라루스와 이탈리아에서처럼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치의 속성은 공백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대중을 위한 관심거리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곳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맹렬한 속도로 구축하는 비제도권 주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새 시스템에서 과거의 기성 정치인들과 정당들이 설 곳은 없을 것이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야당 정치인 예브게니 로이즈만이 거둔 승리와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러시아 애국자'당이 거둔 성공이 그런 상황을 보여주는 일부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권력은 이들의 정계 진입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이제 이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네 번째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섯 번째 문제점은 권력이 짜놓은 게임의 법칙이 적극적인 소수의 공감을 얻지도 못하고 다수의 보수파를 동원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권력 스스로가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요새는 방어할 사람이 없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권력은 정치적 의제설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의 정황을 볼 때 권좌에 앉은 이들은 국내정치를 위한 의제를 설정할 마음도 없고 하다못해 이 문제를 논의할 의향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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