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힘들의 대결…소프트 외교 시대 도래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일러스트=니야즈 카리모프)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구질서를 대체하는 신세계질서는 점점 더 국가와 블록 사이의 '소프트 파워' 대결 양상이 될 것이라고 정치학자 니콜라이 즐로빈은 지적한다.

오늘날 주권 국가들이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을 단독으로 통제하는 능력을 서서히, 그렇지만 분명하게 잃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계 경제는 점점 글로벌화되고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세분화되고 있어 국가경제들 간에 경계선을 긋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정보 이동 시스템도 사실상 글로벌화되어 국가 간 경계를 초월한 지 오래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사람들이 매일 국경선을 넘나들고 있고, 수백만 명의 사람이 타국에서 살며 일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20여 년 전과 달리 전형적인 이주자들의 모습도 아니다. 국제 정치와 외교도 이러한 대세를 빗겨갈 수는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각국에서 소수 집단의 몫이었거나 철저한 기밀 활동이었던 것이 이제는 점점 더 공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전통적 의미의 국가 역할이 축소되고 주권의 개념이 흐릿해지면서 고전적 방식의 국가 간 외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현대적 조건하에서 외교 문서와 비공개 회담 내용을 비밀에 부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촌 시민사회가 국경을 초월해 국제정치에 점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권국가들의 이해관계도 점점 더 상호 밀접해지는 동시에 더 불확실하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다. 국가의 이해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탓에 자국의 이익 수호를 위해 벌인 군사 분쟁이 언제든지 자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전쟁으로 변할 수 있다.

현대 세계의 역동적 변화에 맞춰 국가 엘리트들은 신속대응 능력을 갖추고 항시 우선순위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외교의 기본에는 근본적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소프트 파워'와 같은 비전통적인 외교수단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영향력, 권위,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하여 비정치적, 더더우기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자국의 가치관와 우선정책, 이데올로기, 시각을 전파하는 것, 그것이 소프트 파워다.

물론, 군사적인 수단은 여전히 유효하며 '하드 파워'의 필요성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거의 70년 전인 2차 대전 종전 당시의 현실에 맞춰 형성됐던 구질서를 대체하게 될 신 세계질서에서는 국가, 블록들 간의 소프트 파워 대결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 위해 국가 수준의 계획을 수립하고 그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 기술과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발전 전략과 우선정책, 목표를 정립하고 재정·조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 정계와 지식인 계층의 지지를 얻어내고 시민 사회와 외국의 친러 인사들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러시아는 국가 건립 이래 소프트 파워에 대한 문제를 그냥 없는 문제로 간주해 왔다. 둘째, 과거 소련에 꼬리표처럼 붙었던 수많은 고정관념과 클리셰의 잔재가 아직도 러시아에 드리워져 있다. 셋째, 러시아의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경쟁국과 대립국들, 적대국들은 단지 러시아가 싫다거나, 아니면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아니면 경제적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쭉 '반러시아' 이미지 확산에 힘써왔으며 그 성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떠한 경우든, 분명한 것은 소프트 파워들이 충돌하는 현재의 국제 무대에 러시아의 모습은 거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권위를 다시 공고히 하고 자신에 걸맞는 적절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싶다면 이런 현실을 수수방관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러시아의 정치적·경제적 손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부드러운' 러시아는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올바른 접근방법을 찾는다면 러시아의 소프트 파워 잠재력은 미국이 지난 수십 년 간 키워온 것에 맞먹을 만한 것이다.

앞으로 몇 년 사이 러시아는 글로벌 의제에 국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기회들을 갖는다. 러시아는 금년 G20 의장국이며, 내년에는 G8 의장국, 후년에는 브릭스 의장국을 맡게 된다. 여기에 2014 소치올림픽, 하계 유니버시아드, 월드컵 개최 등을 더한다면 앞으로 몇 년 간 국제 뉴스에서 러시아의 자리는 더 커질 것이다.

전세계 여론의 관심도 함께 러시아로 몰릴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소프트 파워 강화를 위해 활용하지 않는다면  정말 아까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러시아에는 아직 그런 계획이 없다.

 

본 기사는 로시스카야가제타紙 기사를 Russia포커스 편집부가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이 기사의 러시아어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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