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사태는 차세대 외교관들을 위한 교과서”

(일러스트=세르게이 욜킨)

(일러스트=세르게이 욜킨)

Gazeta.ru의 국제정치 칼럼니스트이자 러시아 민간 외교자문단체 ‘외교국방정책회의(СВОП)’ 의장, ‘국제정치속의 러시아(Россия в глобальной политике)’誌 편집장인 표도르 루키야노프가 과거의 국제위기들과 현 시리아 사태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외교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하는 국제위기들이 있다. 시리아 사태가 이 범주에 속한다. 사례연구에 이보다 이상적 소재는 없다. 임박한 평화협상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는 지금 특히 그러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평범한 원칙이 있다. 그래서인가, 이해당사국들이 모여 앞으로 갈 방향을 정할 가상의 ‘원탁회의’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무기를 쩔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유럽연합(EU)은 시리아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연장치 않기로 했다(여기서 시리아는 아시다시피 반군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엠바고 철폐를 적극 찬성하고 나선 것은 영국과 프랑스뿐으로 나머지 국가들은 과연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하는 것이 합당한 지에 대해 다양한 강도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시리아 야권을 지원하기로 한 이들의 결정은 한 가지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EU의 성명은 무력을 통한 해결이 여전이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꽤나 현실적인 선택지 중 하나라는 점을 시사한다. 달리 말하면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최후의 승리까지 전쟁을 벌이겠다는 의미다. 

지대공미사일 S-300 및 기타 첨단무기의 시리아 공급 사실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는 러시아의 행보도 같은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지금 분쟁 당사자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그들이 강대국들이 벌이는 외교 게임에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강대국이 우리를 버릴 리는 없다, 그러니 끝까지 우리 식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형국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반군은 자신들이 각각 등에 업은 러시아와 서방이 국제정치적으로 심각한 이미지 손상이 없이는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러시아와 미국 모두에게 시리아 사태는 원칙의 문제이다. 러시아는 (정권의 민주성과는 무관하게) 세속적으로 존재하는 정부를 지지하며 외세 불개입 원칙을 고수한다. 한편, 서방은 ‘봉기한 민중’과 ‘유혈폭군’을 구분 짓는 이데올로기 그리고 ‘냉전’ 이후 점차 또렷한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 국지적 분쟁 해결 모델(‘분쟁에서 올바른 진영을 선택해 그들이 집권하도록 지원한다’)을 밀어붙이고 싶은 바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니 ‘내편’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실용적인 이해득실의 선택이라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념적 후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 같은 과거의 평화회의에서는 세계의 분할이라는 대사가 중점 논의됐다.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어 이와 유사한 평화회의는 1995년 보스니아 종전을 이끈 데이튼 평화협정과 1999년 코소보 위기로 모두 발칸 반도와 연관이 있다. 이 두 건의 분쟁해결 경험을 되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이유는 두 경험 모두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시나리오로 충분히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데이튼 평화협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외부 세력들은 교전 당사자들을 협상테이블에 앉히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향후 정치체제를 채택하도록 압박했다. 시리아 사태를 2차 제네바 국제회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들이 기대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이다. 

한편 비관론자들은 지금이 1999년 2월 초를 되돌아 볼 적기다. 당시 막대한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코소보 분쟁 해결을 위한 람부이에 평화회의가 소집됐다. 하지만 분쟁당사자들간의 격한 대립으로 회의는 성과 없이 결렬됐다. 

많은 세부적 특수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위의 경우를 시리아에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쟁해결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경우(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사태가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충분하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의 모든 국제위기들과 시리아 사태를 구분짓는 근본적인 차이점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과거 강대국들은 평화 중재를 모색하며 지역 분쟁에 개입할 때 항상 자국의 구체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며 자국에 돌아오는 이익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포스트냉전’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에 따라 유럽의 전략적 지형을 변화시켜 왔다.

앞서 언급한 위상문제를 제외한다면 미국과 유럽, 러시아가 현재 시리아에서 추구하는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이득이 과연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오늘날 중동에서 영향권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허황된 꿈과 같다. 이곳에 관심을 가진 모든 외부 세력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느라 부산하고 자신의 의지나 바램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는데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실용적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이웃 국가들—이 평화회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사실상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내전 당사자들의 협상 가능성은 이들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과거 강대국들이 벌이는 ‘빅 게임’은 현지 세력들이 꾸미는 자잘한 음모들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었다. 이때 강대국들은 현지 세력과의 관계에서 주도적 위치에 서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반대다. ‘현지’ 프로세스들이 자체의 논리를 가진 가운데‘강대국’의 참여는 평행면의 어느 지점에서 이뤄지고, 주객전도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시리아 사태는 미래의 역사가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연구 소재가 되겠지만, 현재의 외교관들에게는 거의 ‘미션 임파시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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