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손 놓은 ‘지구 관리’…중국으로 넘어가나?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최근 지구촌에 글로벌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이제 새로운 세계의 헌병을 찾아야 할 때다. 그동안 세계의 헌병으로 군림했던 미국은 지구촌 관리에 피로감을 느끼는 듯하고 유럽도 종전 후 잃어버린 역할을 되찾을 생각이 지금은 분명히 없어 보인다. 새로운 세계의 지도자를 찾아서 불가피하게도 아시아로 눈을 돌려야 하지만, 아시아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피로에 빠진 미국

1998년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미국을 “대신할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 후 15년이 흘렀다. 현재 미국은 “기운 빠진 나라”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지금 쇠락의 길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과 중동 문제보다는 내부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군 병사들이 과거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시간을 전장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미국의 피로감은 놀라울 게 전혀 없다. 최근 미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을 국방비에 쏟아 부었다. 2011년 미국의 국방비는 G20의 나머지 19개 회원국 전체가 쓴 국방비보다 더 많았다. 총 16조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 발생에서 군사비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이기주의

지난 1월 21일 집권 2기 취임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 중 미국은 세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모든 희생과 역경을 감수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대국민 담화에는 전쟁들로 얼룩진 10년이 막을 내렸다는 또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현대 국가 이념을 거창하게 정의하진 않았지만, 이는 미국의 복지와 안녕이 나머지 지구촌의 복지와 안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로 간단히 규정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임자인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대외정책 목표들에 대해 메시아적 비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소위 말하는 아이젠하워 독트린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쟁영웅이었음에도 재임 8년(1953~1961) 동안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적어도 미국만큼은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처럼 우선정책을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미국이 자신의 국경선 안에 완전히 몸을 웅크리고 들어앉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견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지도자는 누구?

현대 세계에서 뭔가를 전망하는 일은 생색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극히 복잡하고 어렵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 대외정책만큼은 왠지 특별한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경제·재정 상황으로 세계의 헌병이 되기 어렵다. 세계의 헌병이 된다는 것은 신경 쓸 일도 많거니와 돈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미국을 대신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지금 당면한 경제 문제들로 대외정책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다. 러시아는 운 좋게 찾아온 이 기회를 틀림없이 이용했을 법한 소련의 과거 위상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물론, 인도와 브라질이 세계 주도권을 노린다는 건 아직은 지나친 시기상조이다.

국제기구들도 중대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유엔이나 나토, 유럽연합은 지금 가치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면서 현대 세계에서 자신들의 소명이 무엇인지 모색 중이다.

미국에서는 유럽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의 헌병 자리를 맡아야만 하고 또 맡을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물론, 미국인들이 이것을 원한다고 해서 그들의 바람이 곧 유럽인들의 바람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새로운 역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통합 유럽 안에 실질적 통합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위기 상황과 이 위기 돌파를 위한 긴축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첨예한 논쟁 속에 분명하게 반영돼 있다.

결국, 미국은 세계의 지도자로 남고 싶지 않고, 유럽도 세계의 지도자가 될 만한 형편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뭐라 해도 가장 확실해 보이는 후보는 중국이다. 미국과 유럽은 현재 상대하기 힘든 경제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크게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자국의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기만 하면 중국은 이제 거칠 게 없을 것이다.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싶은 욕망이 아주 크다.

이 기사 전문은 엑스페르트誌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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