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친미-반러 이분법 탈피, 러시아는 북한 개방 앞장 서야

(일러스트=단 포토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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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분쟁, 역사갈등 없고 경제 구조도 상호보완적...한미 동맹 유연하게 해석...4강과 전략적 관계 맺어야

 

박근혜 대통령의 신정부가 대외적 좌표를 어떻게 설정할지 한반도 주변국들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 한·러 관계는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양국이 추구하는 국익 구조가 상호 보완적이어서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근거 몇 가지를 제시해 보면 이렇다.

우선 한·러 간에는 우호 협력의 확대를 제한하는 영토분쟁, 민족갈등, 역사 불신이 없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해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 창설 등 주요 이슈에 대한 인식도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과학 기술 협력을 위한 최적의 동반자이며 경제 구조도 상호보완적이다. 철도, 에너지, 식량, 신규 시장 개척 등 점차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커가고 있다는 점도 관계 발전의 긍정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러 수교 이후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체로 전문가들은 양국이 지닌 상호 협력 가능성과 잠재력에 비해 실질 성과가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지정학적 협력의 밀도나 지경(地經)학적 상호 작용 수준 면에서 미ㆍ중ㆍ일ㆍ러 로 대표되는 주변 4강 가운데 한·러 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떨어지고 무역 규모도 가장 낮다.

2008년 9월 양국 관계가 전략적 관계로 격상됐지만 외교적 수사(修辭)와 실질적인 협력 사이에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

박근혜 신정부 시대 한·러 관계가 명실상부한 전략적 관계로 진입하려면 발전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두 가지 요인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북한 요인이다. 그동안 북한은 한·러 관계 발전을 가로막았고, 여전히 막고 있는 상시적 장애물이다. 한ㆍ러 사이의 지경학적 연계성을 강화해주는 일련의 경협 프로젝트들, 예컨대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남-북-러 전력망 및 가스관 부설 등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북한에 가로막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 도발과 핵 개발은 동북아 역내 불안정을 심화시키면서 한·러 관계 증진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북한 세습정권 유지에 일정 수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과는 별개로 북한체제의 평화적인 개혁·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보다 실효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 외교의 미국 중심성이다. 2008년 2월 굳건한 한ㆍ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그해 9월 새삼 러시아 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이유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부활, 일본의 보수 우경화, 미국의 상대적 쇠퇴, 그리고 철도의 연결과 에너지 파이프라인의 부설이 엮어내는 동북아 신질서의 태동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 한국의 독자적인국익 확대와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외교·안보 전략의 기본틀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문제는 현 한·미 동맹 구조하에서 한국 외교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데 있다. 한국 외교가 미국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대러 정책의 자율성은 제한받는다. 한국이 한·미 동맹을 경직되게 수용하고 그 틀 속에서만 움직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도 전략적인 ‘관계 맺기’를 이루기 어렵다. 한·미 동맹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창조성 위에서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4강과의 ‘전략적 관계 맺기’가 시작될 수 있는데, 사자성어로 연미화로(聯美和露) 또는 연미연로(聯美聯露)로 표현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이 한반도의 안보와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주도적으로 확보하려면 친미, 반러, 반미, 친러 등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동맹 및 우방들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발전시키는 가운데 체제와 가치를 달리하는 주변 국가들과도 협력의 틀을 확대해 나가는 중층적이고 선순환적인 대외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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