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발 헛소동

최근 세계 각국 언론은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상태에 놓여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북한당국은 심각한 수위의 호전적인 수사를 쏟아냈다.

북한은 3월 11일자로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남북간 직통전화를 차단했다. 남북 상호불가침조약 또한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국제적 수준의 핵무기와 미사일로 증강된 위대한 인민군이 최고사령관 동지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대도시 주민들은 잦은 고강도 공습훈련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지난 2월 북한 3차 핵실험 강행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유엔 결의에는 몇 가지 새로운 대북 제재가 추가되었으며 평양은 이를 ‘전쟁행위’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 국제사회가 우려의 시각을 보이는 것은 틀림없다. 일부 언론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쟁에 대비해 특파원을 서울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언론사들은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는 셈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물론이고 어떠한 종류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낮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 벌이는 또 한 판의 정치공세를 목도하고 있는 것뿐이다. 북한은 전쟁위협을 통해서 대내외적 심리전이라는 쇼를 벌이고 있다.

한국 정부와 대다수 국민은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 언론이 무시무시한 평양발 위협들을 성실하게 보도하고는 있지만 일반 국민은 이러한 도발과 어쩌면 닥칠지 모를 위험에 대해서 놀라우리만치 침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 ‘위기’와 관련해 한국 주식시장이 꿈쩍하지 않은 것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렇게 평온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들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도발은 한두 해 걸러 있어왔다. 북한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1953년 정전협정이 무효라고 주장해왔고 마지막으로는 2009년 5월 북한 핵실험을 비난하는 유엔 결의에 반발하여 같은 주장을 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이번 엄포도 이미 여러 번 재탕됐던 것이다. ‘불바다’ 도발은 1994년 처음 있었고 2003년에 되풀이됐다. 이따금 북한 언론은 모호한 위협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매우 구체적인 공격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일례로 2012년 7월 북한 중앙방송은 평양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와 자료를 보도해온 한국의 주요 일간지 본사 건물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수도 서울은 물론이고 이 신문사 사옥들도 여전히 건재하다. 북한이 자신의 위협적 발언들을 실행에 옮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일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평양의 최근 잇단 도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 평양의 요란한 행동의 이면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러한 수사법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가 나올 때마다 그들이 보인 전형적인 반응이다. 강도 높은 톤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결의에 대한 북한의 불만과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려는 외교적 제스처인 것이다.

북한 당국이 호전적인 수사를 쏟아내는 이유가 또 있다. 조국이 야비한 적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주기적으로 주민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은 왜 과거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공업이 발달했던 조국이 점점 더 중국, 특히 한국에 뒤쳐지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의문을 품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이야말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을 설명해주는 최선의 방법이다. 공습훈련 몇 차례로 주민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이단적 생각을 뿌리뽑는 것이다. 또한 국가 기강을 확립하고 지도자와 ‘위대한’ 지도자 가족을 중심으로 하나로 단결하는 계기가 된다.

이번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는 다소 과민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반도가 안전지대는 아니다. 반대로 지난 수십 년 동안 경험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육상과 해상에서 언제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국지적 충돌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 그러한 충돌의 가능성은 낮다.  북한의 엄포는 단지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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