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타이가에 떨어진 이탈리아 ‘스라소니’의 모험

(사진제공=발레리 멜니코프/리아 노보스티)

(사진제공=발레리 멜니코프/리아 노보스티)

지난 11월 초 올레크 보치카료프 러시아 군수산업위원회 협의회 부회장은 많은 논란이 되었던 다목적 경장갑차량 Iveco LMV(러시아명 ‘리시’)의 러시아군 공급 계약이 완료되었다고 전했다. ‘리시’ 추가 도입 계획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 계약 체결 당시엔 1,700대 이상, 그 이후엔 무려 3,000대 수입이 언급되었으나 지금까지 러시아에서 조립 완성된 차량은 총 358대에 불과하다.

이탈리아의 '리시' 도입을 추진한 사람은 정확히 2년 전 무기조달 분야 부정부패 수사 과정에서 해임된 아나톨리 세르듀코프 전 국방장관이었다. '리시'만큼 유명한 프랑스의 헬기항모 미스트랄, 이스라엘의 무인기 도입을 추진한 것도 그였다. 세르듀코프 장관은 군에서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차에 나온 '리시' 도입 계획으로 러시아 방산업계에서도 그는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리시'의 러시아 경쟁모델 '티그르'

경장갑차 LMV M65 ‘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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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갑차 LMV M65 '리시' 

같은 시기에 러시아에서 '리시' 유사모델 '티그르(Тигр, 호랑이)'가 출시되자 두 기종은 끊임없는 비교의 대상이 됐다. '리시'의 단점으로는 운전석과 조수석이 3인승 뒷좌석과 분리된 내부구조가 꼽혔다. 차량이 옆으로 전복되는 경우 문 하나로만 탈출해야하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인데 전투시에 이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운전병이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 뒷좌석을 통해 소개시킨 후 뒷좌석 승무원이 조종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다. 또한 러시아 육군 기계화 보병 1개 분대는 9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1개 분대를 수송하려면 차량 두 대가 필요하다. 훈련장에서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눈 속에 빠지는 모습이 담긴 국가테스트 영상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개인 화기 사용을 위한 총안의 부재, 그리고 제조사가 발표한 -32~+49℃의 운용온도도 논란이 되었다. 러시아 중부지대에서조차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세라믹 장갑용 플라스틱 평판이 혹한의 환경을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군사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왔다.

얼마 후 두 장갑차량 모두 저마다 장단점이 있으며, '리시'의 단점 중 몇 가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눈밭에서 신속하게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는 실험용 첫 도입 분량이 한대 환경에 맞게 조정되지 않아 노르웨이나 오스트리아 육군용 차량처럼 방설장비를 부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또한 설령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리시'가 옆으로 전복돼 운전병이나 조수석 승무원이 탈출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후 2011년 3월 독일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러시아 전문가들이 Iveco 차량에 철갑소이탄 B-32로 시험포격을 가한 결과 차체가 버텨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바퀴와 바닥 밑에 탄약을 설치해 두 차례 터트린 결과 운전석에 있던 마네킹은 손상되지 않았다.

문제는 장갑

요컨대 장갑수송차 BTR을 기반으로 설계된 러시아산 '티그르'가 러시아의 열악한 도로 환경에 더 적합하며 내부공간도 편리하게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티그르' 장착 엔진은 러시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출력을 높이거나 차량 개량도 가능하다. '리시'는 보다 안락하고 방어력이 뛰어나며 첨단 세라믹 장갑을 썼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 세라믹 장갑이 오히려 러시아에서 운용하는 데 문제가 되었다.

가장 먼저 우려의 목소리를 낸 공수군 사령관 블라디미르 샤마노프 중장은 "‌전술·기술적 사양으로 볼 때 리시는 러시아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유지보수, 운용, 수리 문제에 있어서도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번째 문장에 바로 불만의 핵심이 담겨 있다. 장갑은 독일, 장갑에 들어가는 폴리에틸렌 패널은 네덜란드, 변속기는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ZF, 원격무기조종모듈은 노르웨이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물론 세르듀코프 전 국방장관은 향후 리시의 부품 70%를 러시아산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러시아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 국가가 그렇게 민감한 기술을 넘겨주리라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결국 샤마노프 사령관은 개량형 티그르 쪽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리시 도입 계약 유지를 둘러싼 우려는 2013년 1월 블라디미르 치르킨 육군 총사령관이 "리시 추가 도입과 관련한 Iveco와의 계약은 중단되었다. 이미 대금지급이 된 분량은 거의 전량 인도받아 조립 중이며 곧 실전배치될 것이다. 하지만 추가 도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확인되었다.

"우리에게는 '메드베디(곰)', '티그르(호랑이)', '볼크(늑대)' 장갑 시리즈가 있다. 또한 전투모듈 탑재가능한 경장갑차량 시리즈를 생산하기 위해 실험설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산 모델들과는 달리 리시는 기관포 한 대와 무장 후 무게 100kg 이하의 병사 4인을 태우게 되면 차량 상부에 150kg의 추가 화물밖에 실을 수 없다"고 샤마노프 사령관은 설명했다.

2013년 쇼이구 후임 국방장관의 이탈리아 방문 중 이 입장은 확인되었고, 이미 도입된 차량의 부품 공급 계약도 체결되었다. 올 여름 시작된 대러 제재와 프랑스 생나제르항에 발이 묶인 미스트랄의 경험에서 우리는 국내 생산사를 선호해온 러시아 국방부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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