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즐겨 연주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5가지 사실

1958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958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레프 이바노브/ 리아노보스티
지난 9월 25일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탄생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가 작곡한 ‘레닌그라드 교향곡’의 창작을 둘러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모아 봤다.

1. 전 세계 졸업 연주에선 쇼스타코비치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세에 음악원을 졸업했다. 그의 교향곡 1번이 졸업 작품이 됐다. 독일 지휘자 겸 작곡가인 브루노 발터 베를린 시립오페라단 단장이 듣고 곧바로 악보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곡은 1927년 11월 외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됐다. 발터에 이어 레오폴드 스토콥스키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지휘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2006년. 출처: Youtube

2. 무성 영화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려고 결심했다. 1919년 그는 페트로그라드 음악원(페트로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에 입학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러시아는 내전이 한창이었다. 음악원 교실은 추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음악회를 찾아 다녔다. 1923년에는 무성영화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뽑는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영화가 상영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즉흥 연주를 했다. 그런 연주 가운데 마음에 든 대목들은 남겨뒀다가 발전시켜 반복해서 연주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각 영화 주인공 하나 만을 위한 멜로디를 창조했다.

3.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 출처: 알렉산터 콘코프/ 타스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 출처: 알렉산터 콘코프/ 타스

쇼스타코비치는 또 다른 유명 러시아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선례를 따라 작곡도 하고 공연도 할 계획이었다. 1927년 쇼스타코비치는 제1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 참가했다. 바르샤바에서 그는 자작곡 몇 편을 연주했지만, 명예상을 받는 데 그쳤다.

4.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그의 교향곡이 연주되다

쇼스타코비치는 2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된 1941년 9월에 교향곡 7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곡의 세 부분을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에서 작곡했고 12월 쿠이비셰프에서 작업을 완료했다. 교향곡 7번은 1942년 8월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에서 울려 퍼졌다. 극심한 곤란 속에서도 음악가들은 힘을 내 리허설을 마치고 대중 앞에서 공연했다. 객석은 만원이었다. 레닌그라드 폭격이 멈추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은 조명을 끄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시 전체와 온 세계가 함께 교향곡을 들었다. 악보가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영국과 미국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5.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노래가 소련 우주산업의 테마송이 되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노래 ‘조국이 듣고 있다 — 조국은 알고 있다’의 한 대목은 전연방 라디오 방송의 테마송이 됐다. 지구 최초 인공위성의 호출 신호를 이 음악의 한 대목에 ‘섞어 넣은 것’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도 지구에 착륙할 당시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직후 이 노래는 소련 우주산업의 테마송이 되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기념 모스크바국립음악원 합창단이 예브게니 돌마톱스키의 시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곡을 붙인 노래 ‘조국이 듣고 있다’를 부르고 있다. 출처: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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