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즐겨 연주하는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5가지 사실

2016년 9월 28일 안나 포포바, Russia포커스
지난 9월 25일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탄생 1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가 작곡한 ‘레닌그라드 교향곡’의 창작을 둘러싼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모아 봤다.
Dmitry Shostakovich
1958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출처 : 레프 이바노브/ 리아노보스티

1. 전 세계 졸업 연주에선 쇼스타코비치를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세에 음악원을 졸업했다. 그의 교향곡 1번이 졸업 작품이 됐다. 독일 지휘자 겸 작곡가인 브루노 발터 베를린 시립오페라단 단장이 듣고 곧바로 악보를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 곡은 1927년 11월 외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됐다. 발터에 이어 레오폴드 스토콥스키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도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지휘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 지휘. 2006년. 출처: Youtube

2. 무성 영화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려고 결심했다. 1919년 그는 페트로그라드 음악원(페트로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에 입학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러시아는 내전이 한창이었다. 음악원 교실은 추웠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 음악회를 찾아 다녔다. 1923년에는 무성영화 배경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뽑는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영화가 상영되는 한 시간 반 동안 즉흥 연주를 했다. 그런 연주 가운데 마음에 든 대목들은 남겨뒀다가 발전시켜 반복해서 연주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각 영화 주인공 하나 만을 위한 멜로디를 창조했다.

3.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 출처: 알렉산터 콘코프/ 타스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 출처: 알렉산터 콘코프/ 타스

쇼스타코비치는 또 다른 유명 러시아 작곡가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선례를 따라 작곡도 하고 공연도 할 계획이었다. 1927년 쇼스타코비치는 제1회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 참가했다. 바르샤바에서 그는 자작곡 몇 편을 연주했지만, 명예상을 받는 데 그쳤다.

4.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 그의 교향곡이 연주되다

쇼스타코비치는 2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된 1941년 9월에 교향곡 7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곡의 세 부분을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에서 작곡했고 12월 쿠이비셰프에서 작업을 완료했다. 교향곡 7번은 1942년 8월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에서 울려 퍼졌다. 극심한 곤란 속에서도 음악가들은 힘을 내 리허설을 마치고 대중 앞에서 공연했다. 객석은 만원이었다. 레닌그라드 폭격이 멈추지 않았음에도 공연장은 조명을 끄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시 전체와 온 세계가 함께 교향곡을 들었다. 악보가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영국과 미국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5.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노래가 소련 우주산업의 테마송이 되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노래 ‘조국이 듣고 있다 — 조국은 알고 있다’의 한 대목은 전연방 라디오 방송의 테마송이 됐다. 지구 최초 인공위성의 호출 신호를 이 음악의 한 대목에 ‘섞어 넣은 것’이다.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도 지구에 착륙할 당시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직후 이 노래는 소련 우주산업의 테마송이 되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기념 모스크바국립음악원 합창단이 예브게니 돌마톱스키의 시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곡을 붙인 노래 ‘조국이 듣고 있다’를 부르고 있다. 출처: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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