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프 왕가의 사원, 카잔 성당에 관한 열 가지 비밀

2017년 1월 4일 Culture.ru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잔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영감을 얻어 1811년 건축되었다. 북방의 수도를 장식하는 이 의미 있는 건축물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실들을 되짚어본다.

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

1. 러시아 건축가 안드레이 보로니힌이 건축했다.

러시아 황제 파벨 1세는 ‘축복받은 성모 마리아 교회’가 있던 자리에 카잔 성당을 건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황제는 성당 건축 공모전을 열었고, 이 입찰 경쟁에 이탈리아인 피에트로 곤자고, 영국인 찰스 카메론, 프랑스인 장 프랑수아 토마 드 토몬이 참여했다. 그런데 황제가 카메론의 시안을 승인하고 난 뒤 스트로가노프 백작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던 젊은 건축가 안드레이 보로니힌의 시안을 황제에게 추천했다. 보로니힌의 안에 흡족한 왕은 그를 수석 건축가로 임명하였다.

2. 로마와 피렌체 사원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

파벨 1세는 새로 지어질 성당이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을 연상시킬 수 있기를 원했다. 보로니힌은 이탈리아 사원의 주랑과 흡사한 거대한 주랑을 설계했다. 카잔 성당의 96개 주랑은 성당 주위를 두르지 않고 넵스키 대로를 향해 활짝 열린 듯 펼쳐져 있다. 보로니힌의 설계도에는 성당의 남면에도 주랑을 세운다는 계획이 들어있었지만, 뒤에 변경되었다.

카잔성당의 북문은 로렌조 기베르티가 만든 피렌체 세례당의 ‘천국의 문’을 본떠 청동으로 주조됐다. 당시 사람들은 보로니힌을 비난하며 ‘복제자’라고 불렀다.

3. 카잔성당 건물을 자연석 박물관이라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잔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잔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

사람들은 카잔성당을 러시아 자연석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주로 쓰인 석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서 채취한 석회화된 응회석인데 이 돌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을 때 쓰인 이탈리아 석회석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다공성 응회석은 쉽게 가공할 수 있어 성당의 외벽이나 기둥머리, 프리즈, 문턱을 만드는 데 쓰였다. 내부 장식을 위해 보로니힌이 선택한 석재는 카렐리야 대리석, 현지 반암, 벽옥이었다. 성당 실내는 담홍색 화강암으로 세운 56개의 기둥과 금을 입힌 기둥머리로 장식하였다.

4. 특출한 러시아 예술가들이 실내 장식을 맡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잔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상트페테르부르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잔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

카잔 성당의 외부와 내부는 조각과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성인들의 청동 조각상을 만든 이들은 스테판 피메노프, 이반 마르토스, 발실리 데무트-말리놉스키이다. 카를 브률로프, 블라디미르 보로비콥스키 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성당의 벽을 장식했다.

5.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기억하는 성당 박물관이 되었다.

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카잔 성당. 출처 : Lori/Legion-Media

카잔성당은 1812년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에 봉헌되었다.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미하일 쿠투조프는 전쟁터로 떠나기 전 성당 예배에 참석했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군의 깃발, 기치, 점령한 도시들의 암호장(cipher code), 루이-니콜라 다부 프랑스군 야전 사령관의 지휘봉 같은 전리품들이 카잔 성당으로 보내졌다.

6. 로마노프 왕가의 성당이었다.

카잔의 성모 성화. 출처 : 세르게이 퍄타코프/리아 노보스티카잔의 성모 성화. 출처 : 세르게이 퍄타코프/리아 노보스티

성모마리아 탄생 교회는 로마노프 왕가의 궁정 부속 성당이었다. 이곳에 왕조의 수호성인으로 여겼던 카잔의 성모 이콘(성화)이 보관되었다. 카잔성당이 세워지자 성물도, 궁정 부속 성당의 역할도 다 물려받게 되었다. 황실 가족들은 이곳에서 성혼식을 올렸고,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 기도를 모면하자 이곳에서 감사기도를 드렸고,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도 이곳에서 축하됐다.

7. 황제의 중요한 성물을 보관했다.

카잔성당은 러시아 정교에서 가장 유명한 성물 중 하나인 성모 마리아 이콘을 수호성인으로 하면서 성스러워졌다. 성당에 기적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이콘이 보관되어 있다. 전해오는 말로는 표트르 대제가 직접 이 성물을 페테르부르크로 옮겨오라고 명령했다.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가 건축되기 전에는 페트로그라드 방면에 있던 작은 예배당에 이 이콘이 보관돼 있었다.

8. 이 성당 내에 복지관이 있었다.

19세기에 카잔성당에는 어른들을 위한 일요일 학교가 운영되었고, 성당 신문이 발간됐다. 성당은 유명한 복지관도 됐다. 1차 세계대전 때 카잔성당에서 식량과 따뜻한 옷을 모아 전장으로 보냈고, 성도들은 돈과 교회 자금을 모아 러시아에 남보다 앞서 이동진료소를 차렸다.

9. 종교와 무신론 역사박물관으로 변모했다.

성 알렉산드르 넵스키 공작의 유골. 출처 : 카를 불라/리아 노보스티성 알렉산드르 넵스키 공작의 유골. 출처 : 카를 불라/리아 노보스티

1929년 볼셰비키들은 성당을 폐쇄했고, 3년 후 과학아카데미에 넘겨 줬다. 성당의 둥근 지붕을 장식한 십자가는 첨탑이 달린 도금한 공으로 대체되었고, 교회 용품들은 여러 박물관으로 흩어졌다. 성당에는 종교와 무신론 역사박물관이 들어섰다. 전시품들은 기독교, 이슬람교, 동양의 신앙이 탄생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10. 소련시절, 성당이 보관하던 유골을 천장과 지붕 사이에 숨겼다.

성물 전송의 의식, 1991년. 출처 : 세르게이 콤파니첸코/리아 노보스티성물 전송의 의식, 1991년. 출처 : 세르게이 콤파니첸코/리아 노보스티

성당이 보관해 온 성자들의 유골은 20년 가까이 성당의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서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종교와 무신론 역사박물관의 직원들이 성 알렉산드르 넵스키 공작, 성 조시마 등 성인들의 유골을 다락으로 옮겨놨기 때문이다. 1991년이 되어서야 이 성물은 성당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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