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출판 150주년

두 노파를 살해한 페테르부르크의 한 대학생을 그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은 러시아 문학과 문화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과 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죄와 벌’은 지금도 창작과 철학적 탐구의 원천이 되고 있다.
Ilya Glazunov's Dostoyevsky
러시아 화가 일리야 글라주노프의 그림 '도스토옙스키'. 1962년. 출처 : 바벨 발라바노프/리아 노보스티

1865년 상인의 아들로 분리파 교도인 게라심 치스토프는 여주인 집을 털기 위해 그녀의 세탁부와 요리사 노파 두 명을 살해해 기소됐다. 아파트에는 온통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철제 상자에 들어 있던 황금 보석들이 도난당했다. 희생자들은 똑같이 도끼로 살해됐다.

많은 비평가들은 실제 범죄 기록에서 가져온 바로 이야기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토대를 이룬다고 평가한다.

지금도 흥분하는 세계문화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는 도스토옙스키가 세계사 한 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죄와 벌’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지적했고,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자신의 모든 문학 창작에 전해진 진정한 ‘정신적 충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죄와 벌’은 연극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죄와 벌’ 을 각색한 연극들이 전 유럽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연극 가운데 하나는 1888년 프랑스 파리 ‘오데온’ 극장에서 상연된 폴 지니스티(Paul Ginisty)의 작품이었다.

‘죄와 벌’은 영화로도 수 십 차례 각색됐다. ‘죄와 벌’을 각색한 최초의 영화는 이미 1909년 러시아 제국에서 만들어졌다. 가장 성공적인 영화는 소련 영화감독 레프 쿨리자노프의 작품(1969년)이었다.

‘죄와 벌’의 이야기는 많은 현대 영화 작품에서도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우디 알렌은 도스토옙스키를 무척 좋아하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그의 범죄 영화 ‘매치 포인트(Match Point)’(2005)와 미스터리 영화 ‘이레셔널 맨(Irrational Man)’(2015)에는 ‘죄와 벌’과 비슷한 점들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러시아 인기 소설가이자 역사 탐정소설 작가인 보리스 아쿠닌은 소설 ‘F.M’(표도르 미하일로비치)을 썼다. 아쿠닌은 탐정소설 장르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를 없애고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2016년 모스크바에서는 뮤지컬 ‘죄와 벌’이 상연됐고, 런던에서는 ‘죄와 벌’이 록뮤지컬로 재해석됐다.

‘죄와 벌’영화. 레프 쿨리드자노프 감독. 1970년. / Kinopoisk.Ru‘죄와 벌’영화. 레프 쿨리드자노프 감독. 1970년. / Kinopoisk.Ru

유형에서 잉태된 소설

도스토옙스키는 비평가이자 사회평론가인 비사리온 벨린스키의 금지된 편지를 유포한 죄로 4년간(1850-54년) 시베리아 유형을 살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시기의 끔찍한 상황을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묘사했다. 이 시기는 작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스토옙스키는 만연하는 빈곤과 창궐하는 범죄, 알코올 중독 등 당대의 ‘질병’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것을 작품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오랫동안 구상해 온 작품에 착수하려고 할 때마다 뭔가에 방해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는 끊임없이 재정난에 시달린 나머지 몇 푼이라도 벌려고 유상계약 기간까지 서둘러 작품들을 써야만 했다. 마침내 1865년 작가는 당시 영향력 있던 문학잡지 ‘러시아 통보’의 편집자 미하일 캇코프에게 ‘어느 범죄에 관한 심리 보고서’라는 짧막한 단편소설을 발표해달라고 부탁했다.

단편소설은 조용히 장편소설로 발전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다른 모든 문학활동을 접고 1868년 내내 이 소설만 집필했는데, ‘죄와 벌’의 새로운 장들이 ‘러시아 통보’에 서서히 발표됐다. 작가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는 ‘유형수처럼’ 갇혀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도 않고 사람들 사이에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집필 작업에 매달렸다.

‘죄와 벌’은 1866년 출판 당시 러시아 문단에서 가장 많이 논란이 된 작품이다.

3개의 각기 다른 '죄와 벌'

'죄와 벌' 초고와 메모가 담긴 노트는 모두 3개가 보존돼 있는데, 이것이 사실상 3개의 초고본이다.

초고 노트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왜 살인을 했고 주인공의 정신 속에서 왜 똑같은 분열(라스콜리니코프라는 성은 러시아어에서 ‘분열’을 의미한다)이 일어났느냐는 소설의 핵심 질문에 대한 답변을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찾고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초고본들에는 각기 다른 해석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초고본에서 주인공은 아주 하찮은 사람을 살해하고 그의 돈으로 많은 선량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한다.

두 번째 초고본에서도 여전히 라스콜리니코프는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탐욕스러운 노파로부터 세계를 해방한다는 인도주의 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역설적인 사상은 권력을 향한 의지로 발전하게 된다.

세 번째 초고본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이 사상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 다시 말해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살인할 수 있는지, 살인할 권리가 있는지 시험해 보는 ‘나폴레옹 사상’으로 인해 파멸에 이른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한 초고본에서는 심지어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살을 결심한다는 메모가 담겨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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