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숄의 ‘여성’ 시대는 18세기에 시작됐다. 레이스 뜨개질과 자수를 알고 있던 우랄의 카자크 여성들이 솜털로 성긴 숄을 짜기 시작했다. 망사처럼 성긴 짜임 때문에 ‘거미줄’이라 불렸다. 오렌부르크 시가 건립된 것과 거의 동시에 수공업이 발생했다.
2. 숄 수공업이 하나의 산업이 된 데는 과학적인 고려가 있었다. 민속학자 표트르 리치코프는 산양 솜털의 치유력에 주목했고 1766년에 오렌부르크에 솜털뜨개질 산업을 육성할 것을 제안했다.
3. 오렌부르크 숄의 ‘세계무대 첫 출연’은 19세기 중반 파리에서 있었다. 1862년 런던 세계박람회에서는 오렌부르크의 카자크족 여성 마리야 우스코바가 염소 솜털로 짠 숄로 금메달을 받았다.
4. 오렌부르크 숄의 가장 중요한 비밀은 독특한 솜털이다. 두께가 16미크론(1mm의 1/1000)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늘다. 참고로 유명한 앙고라 산양 솜털의 두께는 22~24미크론이다. 우랄의 산악초원지대에서 방목되는 산양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는 솜털을 갖고 있다.
5. 19세기에 오렌부르크 산양을 프랑스, 남미, 호주에서 사육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가혹한 추위에 익숙해진 볼가강 유역 산양들에게 온화한 기후가 맞지 않은 탓이었다. 타지로 옮겨진 산양들은 원래와 같은 양질의 솜털을 생산하지 못 했다.
6. 오렌부르크 산양 솜털은 제정러시아의 수출품목 중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했다. 프랑스가 수만 푸드(러시아의 무게 단위, 1푸드=16.38kg)를 구매했다. 영국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오렌부르크 이미테이션’이란 꼬리표를 단 숄이 제작됐다.
7. 소련에서 진품 오렌부르크 숄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품이었다. 수제 숄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1985년 이전까지 직공들은 국가명부에 등록돼 있었고, 그들이 짠 숄은 수출됐다.
8. 가장 큰 숄은 가로, 세로 3.6m로 2013년에 오렌부르크의 한 공장에서 만들어졌으며, 솜털 실 13.5km가 사용됐다. 이전의 기록은 약 90년간 유지됐다. 죨토예 마을의 교회 합창단 지휘자 예르몰라이 표도로프가 손으로 뜬 뜨개코 1천 개짜리 숄이다.
9. 러시아를 방문했던 많은 유명인사가 오렌부르크 숄의 주인이 됐다. 그 중에는 스페인 오페라 가수 몽세라 카바예, 프랑스 여배우 아니 지라르도, 팝가수 마돈나와 퍼기, 미국 여배우 숀 영을 비롯한 여러 스타들이 있다.
10. 오렌부르크 숄이 반지를 통과하고 거위알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사실이나, 이는 진품 판별법은 아니다. 이는 유명한 ‘거미줄’ 숄에 국한된 이야기다. 더 묵직한 오렌부르크 숄은 반지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대신에 추위 속에서 더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