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민감독 엘다르 랴자노프 88세 일기로 타계

안톤 데니소프 / 리아 노보스티
지난 11월 30일 새벽 모스크바에서 소련-러시아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엘다르 랴자노프가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인은 폐부전과 심부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엘다르 랴자노프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평론가 안톤 돌린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랴자노프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놀라운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가장 소련적인 동시에 가장 소련적이지 않은 감독이었다. 그의 코메디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섞여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프로테우스처럼 변화무쌍한 감독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영화에는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는 그만의 스타일과 톤이 배어 있었다”고 썼다.

영화감독, 배우, 시나리오작가, 제작자, TV사회자, 대학강사 등 그는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27년 11월 18일 태어났다. 그가 찍은 첫 번째 순수 장편영화는 1956년작 ‘카니발의 밤(Карнавальная ночь)’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소련에서 관객동원수 1위를 차지하면서 ‘국민영화’로 등극했을뿐 아니라 에든버러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후 랴자노프의 영화는 찍는 족족 소련 극장가에서 히트를 쳤지만, 영화제들로부터는 사실상 외면을 받았다.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영화는 지나치게 단순했다. 그의 영화는 영화제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독특한 리듬으로 영화 ‘미식가’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거나 지루함으로 눈꺼풀을 무겁게 만든다거나 영원히 정지한 듯한 화면을 보면서 관객들이 저마다의 사색에 빠지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가장 중요하며 가장 영예로운 ‘관객’이라는 경쟁 부문에서 승리했다”고 영화평론가 발레리 키친은 밝혔다.

랴자노프는 생전 순수영화 28편, 다큐영화 12편을 찍었으며 22편의 영화시나리오를 썼고 세계영화를 다룬 TV시리즈물 상당수를 만들었다. 그는 국내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학예술기사훈장을 받기도 했다.

Russia포커스가 엘다르 랴자노프 감독이 찍은 ‘국민영화’ 5편을 소개한다.

1. ‘차조심(Берегись автомобиля)’ (1966)

이 서정적인 코메디는 ‘현대판 로빈훗’의 활약을 그린 도시기담 영화다. 주인공은 악당, 부패관리들의 자동차를 훔쳐서 판 돈을 고아원 은행계좌로 송금한다.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영화속 주인공 유리 데토치킨은 소련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2012년 사마라에서는 데토치킨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의외로 이 영화에 대한 영화제들의 반응도 좋았다. 멜버른, 시드니, 에든버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2. ‘이탈리아인들의 희안한 러시아 모험(Невероятные приключения итальянцев в России)’ (1973)

러시아와 이탈리아가 합작한 이 영화는 프랑코 프로스페리 감독과 공동으로 촬영했으며, 전설적인 영화제작자  디노 드 로텐티스가 제작에 참여했다. 러시아 이민자 여성이 숨겨둔 보물을 찾아 러시아를 찾은 이탈리아인들의 이 좌충우돌 모험기는 오스카상에 빛나는 스탠리 크레이머의 ‘매드 매드 대소동(It’s a Mad, Mad, Mad, Mad World)’ 등 서방의 갱스터 액션영화들의 소련판 패러디였다.

3. ‘운명의 아이러니 또는 시원하시죠!(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егким паром!)’ (1975)

1976년 1월 1일 TV로 첫 방송된 후 지금까지 1억 명이 시청한 러시아 TV영화 중에 최고봉이다(이 영화는 매년 설날 저녁 주요 국영채널을 통해 방영된다). 영화에는 폴란드의 인기 여배우 바르바라 브릴스카가 출연했다. 이 코미디는 사랑에 대한 영화이자 소련 시절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들이 빚어낸 문제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두 아파트가 주소, 외관, 집열쇠마저 똑같아서 생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4. ‘잔혹한 로맨스(Жестокий романс)’ (1984)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오스트롭키의 희곡 ‘지참금 없는 여인(Бесприданниц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랴자노프의 작품 중 몇 안 되는 진지한 드라마 장르 영화로 소련 영화평론가들의 분노에 찬 혹평을 받았지만(원작 줄거리와의 차이점 때문에)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러시아 감독 겸 배우 니키타 미할코프가 맡았던 최고의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 영화의 바람둥이 귀족 세르게이 파라토프였다. 이 영화로 랴자노프는 델리국제영화제 대상을 차지했다.

5. ‘약속의 하늘(Небеса обетованные)’ (1991)

러시아 ‘니카’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후 이 영화는 마드리드국제영화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약속의 하늘’로 ‘최고SF영화상’을 받았다. 상을 받으면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리의 불행과 힘든 삶, 가난한 이들과 체제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아픔과 쓰라림으로 그린 이 영화를 서방에서는 러시아 감독이 찍은 고상한 SF영화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고 랴자노프 감독은 ‘마무리짓 지 않은 결말(Неподведенные итоги)’이란 제목의 회고록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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