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세 여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llsteinbild / Vostock-photo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사랑은 그의 소설들처럼처럼 복잡했고 긴장과 심리적 사건들로 가득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소설들에 그랬던 것처럼 그가 사랑한 여자들에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단 한 여자만이 작가의 불안한 영혼에 평화와 조화를 안겨 주었다.

첫 번째 사랑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온 뒤에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그는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유일한 19세기 러시아 작가였다. 당시 4년간의 자유박탈과 중노동으로 지치고 만신창이가 된 도스토옙스키는 어느 때보다도 여자의 온기와 관심이 필요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이때 마리야 이사예바가 그의 삶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꽤 복잡하게 형성했다. 도스토옙스키를 만났을 당시 이사예바는 허약한 하급관리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둔 상태였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그녀를 사랑하게 됐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렇게 기다리던 끝에 마리야 이사예바의 남편이 사망하자 당시 생활비 한 푼 없을 정도로 초라했던 작가는 이사예바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청혼했다.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자꾸만 새로운 장애물을 만들어 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마리야 이사예바는 그에게 시련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마리야 이사예바는 어떻게 하면 늙고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을지 조언을 해달라며 편지를 써 보내서 도스토옙스키를 괴롭혔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유명한 도박꾼이었지만, 사랑에서는 절대 도박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들은 결혼했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마리야에게 남편이라기보다는 오빠와도 같았다. 부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하나가 되지 못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문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마르크 슬로님은 자신의 책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세 여자’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마리야가 그에게서 불러일으킨 모든 감정, 그가 그녀에게 불어넣은 모든 것,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 그녀가 그에게 가한 고통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했다. 1864년 마리야가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도 부부는 서로에게 고통만 더 줬을 뿐 밝은 감정은 없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학대받는 사람들(Униженные и оскорбленные)’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동시에 온유한 사랑을 보여준 여주인공 나타샤의 원형이 된 사람이 바로 마리야 이사예바였다.

영원한 사랑

도스토옙스키가 젊은 여대생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를 만난 것은 공개 낭독회 자리에서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2세, 그녀는 22세였다. 아폴리나리야는 도스토옙스키가 마리야에게서 받지 못한 것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취향과 육욕을 함께 나눴다. 온순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던 그녀는 위협적이었던 동시에 유혹적이었던 여장부였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아폴리나리야가 바라는 것을 그녀에게 선사해 주지 못했다. 그는 마리야와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폴리나리야와의 관계는 비밀에 부쳤다. 따라서 곧이어 이들의 관계는 수슬로바의 연이은 배신에 중단되기 시작했다. 가장 길었던 이별은 2년간 이어졌다. 그 이후 아폴리나리야는 작가에게 다시 돌아올 용의가 있는 젊고 순박한 아가씨가 이미 아니었다. 아폴리나리야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시집가지 않을 것이라고 싸늘하게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그의 삶에서 가장 깊은 영혼의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 바로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녀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각인을 작가의 영혼에 새겨 놓았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도스토옙스키는 사람들이 그가 있는 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말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젊은 아내 모르게 아폴리나리야와 편지를 주고 받았고 항상 자신의 작품으로 돌아와 그녀를 묘사했고 자신을 애무하고 때려주던 손길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았다. 그는 매혹적이고 잔혹하고 부정하고 비극적인 이 연인에게 평생 몸과 마음 깊이 충실했다.” 마르크 슬로님의 말이다.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

아폴리나리야 수슬로바 (사진제공=리아 노보스티)

아폴리나리야는 도스토옙스키의 삶 전체에 자취를 남겼기 때문에 작가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의 영원한 사랑의 특성을 느낄 수 있다. 헌신적인 두냐(‘죄와 벌’)에게서도, 정열적이고 고집불통인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백치’)에게서도, 오만하고 신경질적인 리자(‘악령’)에게서도 수슬로바의 특성이 엿보인다. 아폴리나리야는 ‘도박자’에서 여주인공 폴리나의 원형이 되었다.

행복한 사랑

안나 스니트키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속기사였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도박자’를 집필하는 동안 그를 도와주었다. 작가는 미래의 아내보다 25살이 더 많았다. 두 사람은 소설 작업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었던지 며칠 후에는 서로가 없는 삶을 이미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1867년 안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아내가 되었다. 소설 ‘도박자’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도스토옙스키는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랑하는 아폴리나리야의 이미지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게다가 미래의 아내 안나는 소설의 원고를 속기했다.

안나와 결혼했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먼저 실용적인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안정과 자신을 뒷받침해줄 튼튼한 기반이 필요했다. 그리고 처음에 이들의 결혼은 도스토옙스키가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주었다. 하지만 안나는 그 전에 어떤 여자도 감히 하지 못했던 행보를 보여줬다. 그녀는 기꺼이 가정을 유지하고 분위기를 바꿨고 외국으로 떠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혼 1년 후 도스토옙스키 부부는 딸을 낳았고 작가는 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곧이어 부부의 행복한 가정에 큰 불행이 닥쳤다. 작은 딸 소냐가 죽은 것이다. 그 후 이들은 자녀 셋을 더 낳았다. 결혼 생활 14년 동안 안나는 도스토옙스키와 살면서 많은 고통과 고뇌를 겪었다. 두 아이가 죽었고 남편의 질투와 도박중독이 심했다. 하지만 안나는 운명을 탓하지 않고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에게 충실한 아내였다.

안나에 대한 사랑이 작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조화로운 사랑이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녀가 도스토옙스키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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