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생들, 고려인 어린이들을 위해 한국 전래 동화를 번역

(사진제공=Russia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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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를 배우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소비에트 한인을 돕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학생들은 한국 및 중앙아시아,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 어린이들을 위해 한국의 전래동화를 러시아어로 번역, 이를 책으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기로 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 동포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황무지나 다름없는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 터전을 잡아야 했던 동포들은 '고려인'이라 불린다. 현재 국내와 해외에 50만 명에 달하는 고려인 3·4·5세대가 거주 중이다. 하지만 후대로 내려오면 점차 옅어져가는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생각과 열악한 교육 환경 속에서 이들은 점점 고국을 잊어가고 있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고려인 3·4·5세대로 내려오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중 핵심적인 부분인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고려인들이 한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한국 문학작품 중 러시아어로 번역된 작품은 매우 적다.

(사진제공Russia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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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동문학서는 그 수요가 적고,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게다가, 부모와 함께 국내로 이주한 고려인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처한 한국어·한국 문화 교육환경은 열악한 상태이지만 이에 대한 관심과 해결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기던 국내 대학의 러시아 전공생들이 이 문제 해결에 자신들이 발 벗고 나서기로 결심했다. 작년 연말부터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학생 약 10명은, 자신들이 러시아어를 배우는 만큼 스스로의 배움으로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수업 시간에 가끔씩 접하게 된 고려인들의 역사와 실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오랜 논의 끝에 고려인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동화 번역이라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구체적인 목표가 세워지자, 학생들은 망설일 것 없이 한러 전래동화 번역회 '카란다쉬(Карандаши)' 팀을 결성했다. 카란다쉬(Карандаш)는 러시아어로 '연필'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첫 프로젝트로 고려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동화책을 제작하고 기부하는 '고려인 전래동화 나눔 프로젝트(Проект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я корейских народных сказок для корейских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ов)'를 진행하고 있다.

카란다쉬 팀 (사진제공=Russia포커스)
카란다쉬 팀 (사진제공=Russia포커스)

카란다쉬 팀은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전래동화 6편(해님 달님, 흥부와 놀부, 견우와 직녀, 은혜 갚은 까치, 단군신화)을 선정하여, 한국어와 러시아어 두 언어로 모두 읽을 수 있도록 병기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현재 원고작성과 고려대학교의 러시아 원어민 선생님을 통한 감수를 마친 상태이며, 오는 8월까지 출판된 책을 국내외 고려인 자치 모임과 관련 기관에 우선 기부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번 한 권으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전래 동화를 번역, 2기, 3기 이어질 카란다쉬 팀을 통해 꾸준히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기도 하다.

번역 작업을 직접 진행한 황연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 2학년)씨는 "러시아·중앙아시아 등의 문화권에서 살아온 고려인들의 정서를 고려해 번역에 참여했다. 특히 한국어의 의성어나 의태어 중 러시아어에는 없는 것들이 많아 고민을 많이 해야만 했다"고 말하며, "한국어가 서툰 고려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제작된 이번 전래동화집은 국내의 안산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와 광주 사단법인 '고려인 마을'을 대상으로 250여권, 그리고 해외로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해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및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국외 고려인 자치 모임과 기관에 750여권 등 총 1000권을 배부할 계획이다.

카란다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고려인 어린이 및 청소년들의 한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고, 고려인 지역사회와 국내 학생사회 간의 교류를 증진하는데 일종의 지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카란다쉬 팀의 대외홍보를 맡고 있는 정다운(고려대 노어노문학과 2학년)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이 동화책을 받아보는 고려인 동포들 마음 속에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한국'이 한구석에라도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카란다쉬 팀은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통해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알리며, 국내 포털 사이트를 통한 홍보로 제작비 일체를 자신들의 노력으로 모금하는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다.

프로젝트의 지도교수이자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장인 김진규 교수는 "고려인의 역사를 공감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가슴 따뜻한 한국 전래동화 번역프로젝트와 카란다쉬에 많은 관심과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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